교복을 벗고 2/2/2014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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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갔을 때에 일이다. 친구가 꽃게탕을 잘하는 집이 있다며 굳이 “마장역 앞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사실 활어회는 몰라도 해물은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의 성의가 고마워 택시에 올랐다. 가다보니 신답십리 쪽이었고 장안대로에서 좌회전을 하면서 내가 외쳤다. “아니, 이건 우리 학교 쪽이네.” 택시기사가 물어온다. “혹시 한영고등학교 나오셨습니까?” “아니, 어떻게 아십니까?” “저도 그 학교 출신입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도 모르게 태도가 거만스러워지며 대답을 한다. “에이, 기사님보다는 한참 선배지?” “보기에는 제 또래처럼 보이는데요!” 그날 내 나이보다 젊어보였다는 것과 고교 후배를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친구가 말한 “군산 꽃게탕”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자리 앞에 있었다. 이미 학교는 상일동으로 이사한 지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고 “한영외국어학교”는 이제 톱클래스에 올라있다. 고교시절에는 청계천 뚝방에 판잣집이 남루하게 자리를 잡고 오밀조밀 서민들이 부대끼며 살았던 동리였다. 학교 정문에는 “대성연탄”까지 버티고 있어 학교의 미관은 물론 건강까지 위협했었다. 그 옛날 학교터에는 럭셔리한 아파트가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4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전철 “마장”역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우리는 교복세대이다. 고교 3년의 학업을 마치고 교복을 벗던 날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려운 시절이기에 학년마다 교복을 바꾸어 입는 일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에 맞춰 입은 교복은 고3에 올라가며 타이트하게 몸을 죄어왔고 교복과 모자는 노르스름하게 퇴색되어 갔다. 발라드 가수 윤종신의 “교복을 벗고”라는 노래가 오늘따라 새롭게 다가선다. “♬ 오래전 그날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 우리들만 있으면 너의 집 데려다주던 길을 걸으며 수줍게 나눴던 많은 꿈/(중략)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에는 그 옛날 우리의 모습이 있지 뭔가 분주하게 약속이 많은 스무살의 설레임/ 너의 학교 그 앞을 난 가끔 거닐지 일상에 찌들어 갈때면 우리 슬픈 계산이 없었던 시절 난 만날 수 있을테니♪”

결국 이 노래는 두 사람의 결별로 끝이 나지만 교복을 벗던 그해 2월의 추억이 가슴에 저며 왔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하얀 밀가루를 뿌려대고 교복을 찢는 풍경이 그 당시 졸업식에서는 흔하게 목격되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지긋지긋하던 교복을 벗어던졌다. 중학교부터 무려 6년이나 우리를 옥죄어왔던 교복이었다. 그렇게 기르고 싶었던 머리를 기르고 나타난 친구들의 모습은 학창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고교를 졸업하고 만난 여자 친구 앞에서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 경계심 없이 찻집에서 담배를 피워 물며 불을 붙였다. 여친은 말했다. “야, 너무 폼 잡으려 하지 마. 너무 어색하다 얘.” 갑자기 겸연쩍어졌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여친에게 확실히 보여 주고 싶었는데 담배를 피워 문 내 모습이 어설펐었나보다. 스무살의 초상은 그렇게 물들어 갔다.

요사이는 교복의 모양이 참 다양해졌다. 조카가 교복을 사왔는데 42만원을 줬단다. 우리 때는 교복이 검정색 일색이었다. 그 당시 알아주는 교복은 “엘리트”와 “스마트”가 대세였다. 엘리트교복은 천이 부드럽고 구김이 잘 가서 멋쟁이들의 차지였고 스마트는 구김이 별로 없어 나 같은 털털한 학생에게 제격이었다. 멋을 아는 아이들은 교복바지를 살짝 재단하여 변형을 해서 입고 다녔다. 한때는 바지 끝이 벌어지는 “나팔바지”가 유행하더니 나중에는 ‘짝’ 달라붙는 “쫄바지”가 유행을 탔다.

그때는 어서 속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한껏 꿈을 펼치며 야생마처럼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은퇴를 하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손자 사진을 자랑하는 친구를 보며 울음 섞인 헛웃음이 나온다. 불현듯 『高』자 뺏지가 새겨진 모자와 교복이 그리워진다. 잠시라도 그 시절로 돌아 갈수만 있다면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