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L.A.에 이민을 와서 유학생 가족과 가까이 지낸 적이 있다. 신랑은 남가주대학(U.S.C.)공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세 살 된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이 엄마는 연신 남편을 향해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과 달라서 그때는 아주 그 말이 귀에 거슬렸다. 하루는 조용히 물었다. “현주 자매! 자매에게 영준 형제가 오빠이면, 아들과는 어떤 관계가 되는 거야?” 심각하게 물었는데 자매는 웃으며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한다. 워낙 쿨한 성격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오히려 내가 머쓱해졌다.
이제는 그 호칭이 일반화되어 버린 것 같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여학생들이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형”이라는 호칭은 말 그대로 남자 형제끼리의 호칭인데 자매가 선배 남학생을 부를 때 “형”이라고 불렀다. 다시 돌아와서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면 촌수가 상당히 복잡 해 진다. 그런데 신세대들은 당연 한 듯 남편을 향해 “오빠”라고 부르며 살고 있다. 남편하고 살아야 하는데 오빠하고 사니 사회가 복잡 해 지는 것이 아닐까? 언어에는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능력이 숨어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보통 우리는 부부를 부를 때 “여보”라고 부른다. 나도 아내를 부를 때 “여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런데 “여보”는 “여보세요”의 준말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호칭이다. 한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여전히 “여보세요”라고 부르는 것은 제 삼자로 생각하며 산다는 의미가 된다. 너무 극단적인 해석 같지만 한번은 돌아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모님은 남편을 계속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모님은 평상시에는 “여보”라고 부르다가 기분이 나쁘면 “목사님”이라고 부른다나. 목사님은 교회에서나 목사님이지 부부간에 "목사님”으로 부른다면 사모님은 평신도 일까? 아니면 사찰일까?
어떤 부부는 “자기”라고 부른다. 자기?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남편과 아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찾는다는 의미일까? 그러니 서로의 관계가 피곤 해 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떤 분은 남편을 “김 서방”이라고 부른다. 남편의 안부를 물으면 자연스럽게 “우리 김 서방이요? 요즘 너무 바빠요”라고 대답한다. 그 분은 서방님하고 사는 모양이다. 어떤 자매는 계속해서 남편을 “아빠”라고 부른다. 물론 아이들 아빠라는 의미이겠지만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이 호칭은 심각 해 진다. 어떤 남편은 아내를 “베이비”라고 부른다. 미국 냄새가 나는데 아내가 아닌 베이비하고 살려니 그 고충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내가 아는 분은 아예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민망하리만큼, 마치 대학생 커플처럼 불러댄다. 한편으로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서로의 이름을 부른 다는 것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항상 청년 같은 기분을 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씨자(字)를 넣으면 회사 같은 기분이 드니까 빼면 좋겠고, 머리에 흰 꽃이 피어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행복한 부부가 아닐까?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부부는 11% 정도란다. 그러니까 열 명중 한명인 셈이다.
우리 부부도 10여 년 전부터 호칭을 바꿨다. “허니”로.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러면 “허니”와 “달링”은 어떻게 다를까? “허니”는 보통 자기의 아내나 남편 또는 애인이나 자녀에 대한 호칭이다. 반면 “달링”은 나이를 묻지 않고 가장 사랑하거나 귀여워하는 사람을 부를 때에 사용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나 동물까지도 포함해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우리부부만이 아니라 서로를 “Honey!”라고 부르는 부부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은 남편(아내)를 어떻게 부르시는지 궁금한 마음이 있다. 너무 획기적인 변화는 건강에 해로운 법. 부부간의 호칭을 점검하고 애정이 솟아 날뿐 아니라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호칭으로 바꾸어 보시기를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