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은 나이, 인종, 문화를 초월하여 누구나 빠름을 인정한다. 세월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음이 아닐까? 70년대를 풍미한 지성파 포크 가수 박인희. 그녀의 음색은 매우 청아하다. 감정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는 듯하나 노랫말의 정서는 촉촉한 감수성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노래하는 시인’이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쉬운 가사로 인생과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교 시절, 그냥 곡조와 가사가 좋아서 부르던 대표곡 <모닥불>은 나이가 들면서 절절히 그 깊은맛이 전해져 음미하고 있다. 심야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와 선곡한 노래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기에 매료되었고, 무엇보다 박인환님의 ‘목마와 숙녀’ 낭송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시와 음악, 성우의 목소리가 이리도 잘 어우러지는 시낭송이 있을까?
그녀의 수많은 히트곡이 있는 중에 “세월아”라는 곡이 귓전을 때린다. “세월아~”의 가사는 이렇게 펼쳐진다. “가는 줄 모르게 가버린 시절/ 그 날에 고운 꿈 어디로 갔나/ 내 손을 잡으며 이야기 하던 그 사람 지금은 어디로 갔나/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반복)” 마지막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니?”가 가슴을 후벼파며 치고 들어왔다.
지난 12월 4일(수) 오전 9:24분. 우리 밀알의 상징이라 할 “조영희 집사님”(테레사 하지)이 78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중증장애인이면서도 누구보다 남을 챙기며 살아오던 집사님은 워낙 건강이 안 좋아 자주 병원에 실려가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밀알 예배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별명이 “오뚜기”였다.
전화를 걸면 항상 “할렐루야!”로 받으시던 분, 밀알 예배 때마다 맨 앞자리 휠체어에 올라앉아 수화로 찬양하고 예배하던 분. 예배가 끝나고 헤어질 때면 항상 낭랑한 목소리로 “God Bless You!”를 외치며 전동휠체어의 속도를 높이시던 집사님의 잔상은 짧은 시간에 지우기가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처음 만났을때는 50대였는데,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작년 가을. 나는 작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새해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촌 형님 부부를 오랜만에 찾아뵙고 도리를 다하리라’였다. 한국에 가도 집회 인도와 일정에 쫓겨 전화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형수님은 내가 어릴때는 “도련님” 장성해서는 “서방님”이라 부르며 사랑을 많이 주셨다. 형님과 나이 차이가 많아 큰조카 ‘성진’은 나보다 겨우 세 살 아래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형님이 2023년 10월에 돌아가시더니, 형수님마저 12월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부부가 그렇게도 가는 것인가? 너무도 아쉬웠다. 정성이 담긴 선물과 용돈을 안겨드리며 저만치 흘러간 얘기를 오순도순 나누려 했는데 한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한참 지난 얘기지만 내가 영주권을 받아 한국에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정필”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하직했다. 허무했다.
신학공부를 함께하며 평생 신실한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다짐하던 학우들. 사당동, 양지를 오가며 꿈을 키우던 동기 목사들 중에 이미 고인이 된 수가 어림잡아 60명은 넘어간다. 세월처럼 무서운 것은 없는 듯하다. 장애의 멍에를 짊어진 채 모질게 버티며 생을 이어온 나를 격려하고 힘을 주던 선생님들, 교수님들, 교회 형, 누나들. 추억을 함께 쌓았던 친구들. 세월의 흐름 속에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모습을 감추어 가고 있다.
가끔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아니,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가슴에 담고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을 왜 데려가니?” 한해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동포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2025년 새해. 새 글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