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 기억하세요? 10/17/2014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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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국어책에서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아이들이 대답한다. “원자 폭탄이요” “아니, 호랑이요” 이내 선생님이 입을 여신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망각(妄覺)이란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글을 읽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망각이란 무엇인가? 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혹자는 “망각이 있기에 인생이 살 수 있지. 다 기억하면 무슨 수로 사느냐?”고 할지 모른다. 내가 말하는 차원은 그 차원이 아니다. 기억해야 하는데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는가?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시골에 가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특히 외가댁에 가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린나이에 에너지였다. 그런데 어느 여름방학인가? 외가댁에 갔는데 나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시던 외할아버지가 전혀 무표정, 무반응이셨다. 지금 생각하니 치매에 걸린 것이었다. 아무리 웃겨도 딴청만 부리셨다. 옛날이야기도 잘 해 주셨는데 말씀을 안 하신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운했던지, 얼마나 할아버지가 야속했던지! 아무 죄도 없는 ‘강아지’만 부지갱이로 괴롭혀 댔다.

기억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기억은 관심이다. 누구를 만났을 때 이름을 기억한다든지, 그의 가족에 관한 안부를 물어주면 그 사람은 굉장히 고마워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그 마음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얼마 전. 모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하고 담임 목사님과 나란히 서서 성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성도들의 수가 많음에도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이 나올 때마다 목사님은 꼭 한마디씩의 안부를 물어보셨다. 옆에 선 내가 감동을 받을 정도로 목사님은 성도들의 형편을 자세히 알고 계셨다.

좀 안된 표현이지만 그 목사님의 설교는 그리 역동적이지 않다. 설교 시작 10분 정도 지나면 졸음이 밀려올 정도로 밋밋하다. 그럼에도 그 교회는 알차게 부흥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목회자가 성도들의 삶을 기억 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관심이다. 목사님이 ‘자신을 기억하며 기도해 준다.’는 사실 만으로 성도들은 평안을 느끼며 목사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설교가 유창해야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기억은 돌봄이다.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을 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심리학자 Adler는 “출생서열과 생활양식”이라는 학설을 내놓아 많은 사람의 동감을 얻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거기서 서로 엉키고, 담합하고, 요령을 터득하면서 인격이 형성되어 간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이들은 애를 쓰며 산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정신적으로 건강 해 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 아이는 자존감을 상실하고 당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 사람을 기억해 주면 이미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행복 해 진다. 물론 평소 존경하고 흠모하는 분일 때는 그 효과가 더하다. 미움과 사랑은 하나란다. 왜? 사랑하니까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불행한 사람은 잊혀지는 사람이다. 관심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사람처럼 가련한 인생은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은연중에 사람들이 만나면 쓰는 말이 있다. “나를 아세요?” 그 물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떻게 아느냐?” “무엇을 아느냐?” “내 첫인상은 어떠했느냐?”라는 물음이다.

마주치는 분들이 나에게 공히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목사님, 저를 아세요?” “그럼요?” 대답하면 그렇게들 행복해 하신다. 돌아서서 감사한다. “내가 뭐라고!”나도 절로 행복해 진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며 최선을 다하는 것. 기억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할 이유이며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