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 했을 즈음(80년대) 대부분 신혼부부들의 소망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부모님께 안겨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최고 효의 상징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딸 둘을 낳으면서 실망의 잔을 거듭 마셔야 했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의 표정은 서운함이 가득하셨다. 부목사로 섬기는 교회의 딸 넷을 둔 윤 장로님이 계셨다. 내가 내리 딸을 낳는 것을 보며 “딸 넷 되는 것 순간입니다.”해서 마주보며 웃었다. 사실 총각 때는 내심 ‘하이고, 어떻게 아들 하나를 못 낳고 딸만 낳으셨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생 참 모를 일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들 낳아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양로원에 계신 부모님을 매일 찾아 봉양하는 것은 대부분 딸이다. 아들은 가뭄에 콩 나듯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이 가정을 주도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보던 아버지의 강골 모습.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왕처럼 군림하던 아버지는 이제 전설 속에서나 만날 뿐이다. 이 사회 시류를 거스리면 노년이 비참해진다. 아직도 버티고 있는 분들을 보면 가련하기까지 하다.
"측간(화장실)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 "보리쌀 서말이면 처가살이를 하지 않는다"는 까마득한 옛말이 되었다. 한국의 여성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은 유교사상이 뿌리내리는 조선 후기 이후에 현상인 것을 발견한다. 그 이전의 한국의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드러내고 재산과 권력, 그리고 제사에서 균등한 상속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신라시대에 중국에는 없는 여왕이 실재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조선 초기에는 인수대비와 같은 걸출한 인물이 자신의 학문과 정치력으로 권력과 역사를 주무르기도 했다. 한국의 고대 왕국에서 보였던 여성의 막강한 파워는 고려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과거 농경사회나 별다른 무기 없이 전쟁을 하던 시대에는 남성들이 힘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힘보다는 컴퓨터와 다양한 기능이 등장하며 여성들의 활동영역은 점점 확장되어 갔다. 남성 · 여성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대우를 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이 갖는 지위는 물론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에서도 많이 차별된 삶을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틈새에서도 적극적인 참여로 역사를 주도한 여성들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때로는 미모로, 때로는 지혜와 전략으로, 또는 그 시대 문학과 언론을 주도해 가는 문필로, 또는 가정에서 현숙한 아내로 자신을 최고의 사회적인 지위로 끌어올리기도 하고 지배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어여쁜 처자 앞에서 남성들은 순한 양이 되는가보다. 그렇다고 미모만으로 나라를 주도한 것만은 아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개성을 또렷이 보여주며 결코 남자들의 세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뜻을 펼쳐냈다. 그 와중에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는 계기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 속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위대한 일을 한 남자 뒤에는 현명한 여인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남자는 코뿔소와 같다. 목적을 정하면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것이 남자들의 특성이다. 그 남자를 지혜롭게 가꾸어 가는 것이 여자이다. 역사 속에는 여자가 있었음을 발견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열정으로 남자를 움직여간다. 여자라는 이유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은 이제 지나갔다.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만드셨다. 이후 섬세하게 여자를 만드셨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여자를 “신제품”이라고 선언한다. 신제품이 성능도, 디자인도, 속도도, 디자인도 뛰어나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자가 나라를 움직이는 시대가 도래 했다. 가정에서부터 남자들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과 지략으로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여자들이 점령해 가고 있다. 이제 남자들은 분발하며 과거 시대를 관통했던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길을 열어주는 아량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