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는 자(尺)가 들어있다

by 관리자 posted Feb 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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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다 자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의롭고 정직하게 산다고 자부한다. 사건과 사람을 만나며 아주 예리하고 현란한 말로 결론을 내린다. 왜 그럴까? 성정과정부터 생겨난 자신도 모르는 () 때문이다. ‘왜 저 사람은 매사에 저렇게 처신할까?’ 의구심을 갖지만 당사자는 자신의 언어와 행동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눈을 먼저 본다.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의 속내를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한국 사람과 미국사람의 차이는 대화를 할 때에 태도에서 갈라진다. 미국사람들은 무안할 정도로 눈을 맞추며 대화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 뚫어져라 내 눈을 보며 말을 하는 상대의 태도에 당황을 했다.

 

  어린아이의 눈을 마주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처음 주일학교 교사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 거룩하지도 영적이지도 못했던 내가 주일 공과공부시간에 아이들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교사인 나를 신뢰하고 바라보며 말씀에 집중하는 모습 앞에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며 그 과정을 감당해야 했다.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맑디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그 아이들의 가슴에 예수님을 새겨 넣었다. 사람의 눈은 그 사람의 창이요, 소통하는 통로이다. 생각이 복잡한 사람의 눈동자는 흐릿하고 초점을 못 맞춘다.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외모를 먼저 본다. 옷 색깔, 몸매, 목소리, 제스추어 등등. 그러면서 내 안에 숨어있던 자()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판단을 끝낸 뇌가 답을 보내온다. 문제는 그리 정확하지도 않은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한다는데 있다. 시간이 지나며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그러면 그렇지 처음부터 그렇게 보이더라.” 혹은 와우, 뚝배기보다 장맛이야. 생긴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네. 아주 진국이야.” 깊이 들어가 보면 자신의 입맛에 맞느냐 안 맞느냐로 상대를 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언제 부턴가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 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 했습니다. 내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몇번이나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틀림 없이 눈금이 잘못된 자일 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이젠 아무도 재지 않기로 했습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 시를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 가슴에 흘러들어온 자()로 우리는 날마다 다른 사람을 측정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자는 결코 정확내지 정밀하지 않다. 그 사람이 그렇게 보이는 것, 그 사건이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은 내 속에 자()자를 가지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 누구나 가슴에는 자가 들어있다. 심지어는 자면서 꿈속에서 조차도 그 자로 꿈을 꾼다. 또 그놈의 자는 일정치도 않다. 기분과 형편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때로는 거꾸로도 재고 뒤집기도하고 중간에서 부터도 잰다. 내가 재는 것은 다 옳다. 목회를 하고 사람을 만나 관계하는 것이 겨우 자와 자끼리 만나 사랑하고 관계하고 있음을 깨닫고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깊이 숨어있는 자를 끄집어 내 버려야만 한다. 그때야 비로소 보시기에 좋았더라!” 단계가 된다.

 

 생각이 끝나는 자리가 바로 하늘이 시작 되는 자리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