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여기에 3/6/15

by admin posted Nov 25,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빛의_인도.jpg

 

 

삶의 깊은 고독과 번민이 밀려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고통이 심해지다 보니 신앙의 회의마저 밀려오고 장애의 무게는 내 청춘을 짓눌러댔다. 그때 누군가가 내어민 책이 “길은 여기에”였다.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의 자전적 소설인 “길은 여기에”는 그 당시 나에게 엄청난 감동과 위로를 주었다. 마치 누이처럼 다가온 그녀의 글이 내 심장에 생수처럼 스며들었다. 그녀는 세계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패전의 소용돌이가 일본열도를 휩싸며 지나갈 때,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교사직에서 물러난다. ‘자신이 옳다고 가르쳤던 일들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가치관에 혼란을 겪으며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도 모른 채 여러 남자들을 생각 없이 만난다. 그러다가 미우라 아야꼬는 ‘덜컥’ 결핵에 걸린다. 책은 이렇게 이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고열로 쓰러졌다. 폐결핵으로 인한 발병이었다. 스토마이라든가 파스도 없는 시대여서 결핵요양소에서 요양 중이던 친구들은 마구 죽어갔다. 병은 끊임없이 내게 다가와 나를 괴롭게 했다.

‘심장병, 척추카리에스, 대상포진....’ ‘대상포진’은 정말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질병이었다. 온몸에 물집 모양의 발진이 생기더니 얼굴에까지 번져갔고 의사는 내가 ‘실명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이 병은 고통이 사라지지 않고 암세포를 동반하고 있어서 암으로 번지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의 말과는 달리 더 이상 아픔은 없었다. 눈도 실명되지 않았다. 다만 직장에 암세포가 자랐을 뿐. 생각해 보니 병으로 잃게 된 것은 건강뿐이었다.”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 속에서 그녀는 ‘다다시’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위해 매일 편지를 보내고 추운 겨울밤에도 남몰래 병실 아래에서 그녀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었던 ‘마에카 다다시’의 헌신적인 사랑과 전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한 것이 그녀의 나이 37세 때이다. ‘다다시’는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해주기 위해 늑골 여덟 개를 없애는 대수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수술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결국 ‘다다시’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에 이르고야 만다. 아야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과 달리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는다. 그녀의 심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은 신앙은 그녀에게 삶의 용기와 힘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깊은 고통을 통과한 그녀의 글은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돋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길은 여기에”를 읽으며 나는 자주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책을 읽던 시기는 지금처럼 혹독한 겨울이었다. 두 사람의 청순하고도 진실한 사랑. 상대를 배려해주는 너그러움. 결국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지만 그런 중에도 신앙으로 의연히 일어서는 아야꼬의 삶을 통해 내 아픔의 작음을 보았고 내가 살아야할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 창사 85주년 기념 1천만 엔 현상 장편소설에 응모한 그녀는 ‘빙점’을 통해 당선 통보를 받고 기쁨과 흥분에 휩싸인다. 그녀의 나이 당시 42세였다.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만큼 그녀의 사고와 신앙은 성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기도, 말씀이 그녀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빛이 되어 주었다. “자, 하나님 쪽을 보세요! 당신은 이제 고민할 것도 눈물을 흘릴 일도 없답니다.” 그녀의 한결같은 메시지이다.

‘아비큘래대(Abiculedae)’라고 하는 조개 속살로 어쩌다가 작은 모래 하나가 파고들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다. 조개는 이 모래를 빼내려고 이리저리 뒹굴고 몸을 비틀고 뒤척이면서 계속 자기 안에 있는 분비물 ‘나카’(Naca)를 뿜어내게 된다. 그 아픔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영롱한 진주이다. 그렇다. 아픔은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주처럼 소중한 열매를 토해내게 된다. 미우라 아야코는 우리들에게 “구름은 지나가지만 태양은 떠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1999년 10월 12일 오후에 평온한 모습으로 천국에 입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