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낚자

by 관리자 posted Jan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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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되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느라 바쁘다. 매년 같은 멘트이지만 건네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고 보면 시기에 맞는 말이 따로 있는 듯 하다. 아침에 만나면 외국 사람들은 ‘Good Morning’ 한국인들은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식사 하셨어요? 밤새 안녕하십니까?”였다. 시대가 그래서이지만 얼마나 인간적이고 정감넘치는 아침 인사였던가? 어르신들을 만나면 “기침하셨습니까?”라고 했다. ‘콜록콜록’ 기침을 연상했다면 오산이다.

 

 생명의 기침(起寢)이다. 한자 뜻, 그대로 “침상에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공손과 존경의 마음이 담긴 아침 인사이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날인데도 시간에 따라 인사말이 다르다. Bonjour~가장 많이 쓰이는 인사말로,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Bonsoir~일반적으로 오후 6시 이후 저녁에 만난 사람에게 사용하는 인사말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모두 쓸 수 있다. Salut~친구, 가족, 가까운 동료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사용하는 캐주얼한 인사말이다. 역시 불란서풍이다.

 

 꼭 10년 전. 프랑스에 가서 그 인사말을 배우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기억이 있다. 미국 땅을 밟는 순간. 지우개로 지우듯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경우에 맞는 말을 구사하는 사람이 인격자이다. 각 나라마다 언어는 다양성이 있다. 그중에 영어는 라틴어에서 왔기에 변칙적이고 발음도 변화무쌍하다. 뉘앙스는 다채롭다. 그러니 이 정도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대견하다 할 것이다. 말은 기(氣)의 통로요.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이다.

 

 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새해 벽두에 만나며 같은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그렇게 수십년을 마주치며 세월을 벗하고 있다. 낚시는 즐기는 사람은 말한다. 잡는 맛도 있지만 놓아주는 희열도 있다고. 부목사 시절에 교회 안에 낚시왕이 있었다. 원래 직업은 타일을 붙이는 기술공인데 틈만 나면 미사리 강가로 낚시를 다녔다. 덕분에 당시 향어(이스라엘 잉어)는 원없이 먹었다.

 

 어느날 “함께 낚시를 가자”고 유혹해 왔다. 날을 잡고 함께 밤 낚시를 떠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정을 넘어서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정 집사는 연신 고기를 잡아 올리는데 내 낚싯대에는 입질도 없었다. 투정을 부리는 나를 향해 정 집사가 한 말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것입니다.” 그렇게 첫 낚시는 기다리는 것만 배우고 막을 내렸다. 만약 그 밤에 내가 월척을 낚았다면 나는 지금 낚시광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다행스럽다.

 

 나는 일단 진득하게 오래 앉아 있다든지, 단순 노동을 하는 것에는 은사가 없는 듯하다. 낚시를 즐기는 분들은 말한다. 때론 집중하기도 하고 때론 느긋하게 여유를 누리기도 하는 것이 낚시의 매력이라고. 잡혀도 안 잡혀도 그만인데 묵직한 고기를 끌어올리는 손맛의 느낌이 있다면 더더욱 즐겁다고 말이다. .

 

 초릿대를 노려보다가 주변 바닷가 풍경에 빠져들거나 이런 저런 회상에 잠기노라면 시간은 살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그야말로 세월을 낚는 신선놀음이 낚시인 것 같다. 얼마 전 자녀들이 골프를 배운다고 술렁대기 시작했다. “아빠도 함께 하였으면 좋겠다”는 제의도 해왔다. 잠깐 동행하다가 포기해 버렸다. 일단 시간이 많이 걸렸고,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골프를 즐기는 분들이 들으면 “그 맛을 몰라서”라고 할지 모르지만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이제 1년이라는 세월이 선물로 주어졌다. 누군가는 하루를 쪼개어 빠듯하게 살아가기도 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사는 분들도 있다. 쫓기는 시간이 있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여유를 가지고 삶을 곰씹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나보면 시간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100살에 접어든 어르신이 한마디 한다. “어제는 History이고, 내일은 Mystery이고, 오늘은 Gift”이다. 명언중에 명언이다. 주어진 오늘을 값지고 멋있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