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물론 사물에는 이름이 다 붙는다. 10년 전 고교선배로부터 요크샤테리아 한 마리를 선물 받았다. 원래 지어진 이름이 있었지만 온 가족이 마주 앉아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기로 하였다. 갑론을박 끝에 “쵸코”라는 이름이 나왔다. “쵸콜릿”의 준말로 달콤하고 행복하게 사는 강아지가 되라는 의미였다. 서른 살. 아내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허니문 베이비로 첫 아이가 들어섰다. 외아들인 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우리는 아들이 태어나길 바라며 돌림자에 작명을 하고 “혁진”을 기다렸다. 하지만 성별이 딸이라는 판정이 난 후 잠시 난감 해 했다. 해산이 가까우며 여아의 이름을 짓는 일은 답보상태에 빠졌고, 결국 내가 지도하던 중고등부 학생회의 상징을 이름으로 결정하였다.
3년 후 둘째 아이를 가진 후, 아예 태명을 “요한”이라 불렀다. 그만큼 아들에 대한 열망이 우리 부부에게나 어머니에게 간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달이 가까우며 의사로부터 딸이라는 소식을 접하며 또다시 작명에 고심해야 했다. 언니와 연관을 지어 이름을 지었는데 성장하며 생김새도, 성향도 비슷하게 닮아갔다. 이름이 참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세월이 지나며 감사하는 것은 아들보다는 딸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사랑의 표현을 잘해주는 딸들이 너무도 소중하다. 또한 아들 · 딸보다는 둘 다 딸이라는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서로를 보듬어주고 의사소통이 절로 되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오늘은 이름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내가 아는 분은 원래 김숙자였는데, 노씨 남편을 만나는 바람에 “노숙자”가 되었다. 사는 것이 그렇고 그랬는데 요사이 “이민자”씨를 만나 살만하단다. “변천사”씨는 날마다 변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총신대학교 동창 중에 “나원”이 있었다. 교수들마다 출석을 부를때면 “누구냐?”고 물어 손을 들어야했고, 그때마다 교수님은 “나원 참!”하며 조크를 하셨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재력이 튼튼한 처가를 만나 국제신학대학을 세우고는 지금은 이사장으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나원 참!
연세드신 할머니의 이름은 “이분이”이다. 사람들이 대화를 할 때마다 이 할머니는 깜짝깜짝 놀란단다. “이분이, 이분이”해서 말이다. 플로리다에서 목회하시는 심흥보 목사님. 사모님의 이름이 원래 박심이었는데 시민권 등록을 하며 목사님 성을 따라가다보니 “심심”이 되셨다. 1999년 정 · 관계를 뒤흔든 ‘옷로비’ 청문회장에 유명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증인으로 출석하게 된다. 화려한 의상과 여자보다 짙은 화장, 비(鼻)음 섞인 외국사람 같은 그의 한국말씨 등은 항상 뭇 사람들로 하여금 신기루 같은 신비로움을 갖는데 충분하였다. 아무튼 청문회장에서 그의 성명을 묻자 앙드레 김이라고 대답했다가 위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그것은 예명이 아닙니까? 본명을 말해요.” “예, 김봉남입니다.” 그 순간 장내에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왜였을까? “앙드레”와 “봉남”은 어울릴 수 없는 거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명가수 태진아의 본명은 “조방헌”이다. 큰아버지 이름은 “조똘복”이어서 면사무소에 가면 장내는 금방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친아버지는 “조금복”이라나? 유명가수의 흉내를 그대로내는 이미테이션 가수 이름에 “송대감, 너훈아, 패튀김”이 있다. 1990년대 안방을 사로잡았던 ‘말괄량이 삐삐’의 스웨덴 풀네임은 “삐삐로타 빅쿠뚜아리아 롤가디나 쇼코민자 에프라메타 랑스터프롬프 삐삐”란다. “오리나”라는 이름이 있다. “전용택” 씨를 빨리부르면 전용택시가 되고, 공용택 씨, 자가택 씨, 남방택 씨, 최고택 씨 많기도 많다. 방국봉 씨, 나돈조, 나두조 할아버지는 어떤가? 신남현 씨는 신라면 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평범한 성을 가진 것도 행운이고 듣기 좋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가진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름은 잘 지어야 하고 그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사는 것은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