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과 개미

by 관리자 posted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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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소설가이며,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이 어느날 산보를 하다가 모닥불을 발견한다. 무심코 모닥불 옆에 뒹굴고 있는 썩은 통나무 하나를 불속에 집어넣었다. 안타깝게도 거기에 개미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미들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통나무에서 마구 튀어나오더니 잠시 후 다시 불길 안으로 뛰어드는 희한한 모습을 보게 된다. 솔제니친은 그때의 느낌을 되살려 <모닥불과 개미>라는 글을 쓰게 된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속에 통나무 한 개비를 집어 던졌다. 그러나 나는 미쳐 그 통나무 속에 개미집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통나무가 우지직 타오르자 개미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며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통나무 뒤로 달리더니 넘실거리는 불길에 휩싸여 경련을 일으키며 타 죽었다.

 

 나는 황급히 통나무를 낚아채어 모닥불 밖으로 내어 던졌다. 다행히 많은 개미들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어떤 놈은 모래 위로 달리기도 하고, 어떤 놈은 솔가지 위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개미들은 좀처럼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고 하지 않는다. 가까스로 무서운 공포를 이겨낸 개미들은 방향을 바꾸더니 다시 통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 했다.

 

 그 어떤 힘이 그들을 내버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동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타 죽어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는 개미의 생태는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는 것이다. 모계사회인 셈이다. 따라서 불에 타 죽으면서도 그곳에 다시 달려드는 본성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으리라. 자신들의 둥지가 불에 던져졌을때에 개미들은 생존본능에 의해 일단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은 후 다시 그 불속으로 뛰어든다. 목숨을 걸고 알과 여왕개미를 지키려는 노력을 시도한 것이다. 개인이 아니라 가족, 더 나아가 공동체를 구원하고자 하였겠지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인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동물의 세계에는 동료가 약해졌을때에 공격하거나 버리기도 하지만 고래는 다친 친구를 물속에서 업고 다닌다고 한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친구가 숨을 쉬도록 다 같이 수면 위로 들었다 내렸다 하며 돕는다. 흡혈박쥐는 신진대사율이 워낙 높은 동물이어서 사나흘 피를 못 먹으면 동굴에 매달려 있다가 ‘툭’ 떨어져 죽게 된다. 그럴때에 피를 많이 먹은 친구가 토를 해서 친구들한테 나눠줌으로 살려낸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다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다. 대부분 농경사회였고, 이제 막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도기여서인지 이웃을 돌아보는 애틋함이 있었다. 부자집 제삿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모처럼 주어지는 별식을 기대하며 그 집 앞에 줄을 섰다. 공무원 아들인 나도 친구들의 행렬에 파묻혀 늦은 밤 고사떡을 얻어먹은 경험이 있다. 꿀맛이었다.

 

 추수를 할때에도 바닥에 떨어진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거둬들이지 않았다. 주인의 낫질이 거쳐간 들판에 자식들까지 동원하여 이삭을 줍는 광경은 흔한 풍경이었다. 업어주고 밀어주고 격려하면서 살던 그때가 그래서 그립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할수록, 지식수준이 높아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소위 금수저들은 약하고 힘겨워하며 살고 있는 이웃들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누리고 더 누리는데 익숙해 있다. 타 죽어가는 개미를 구하기 위해 그 불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박애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비록 내게 손해가 올지라도 아니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할지라도 나라와 이웃을 위해 과감히 몸을 던지는 개미 정신이 필요할 때이다. 짧은 글 속에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운을 머금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