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날리기

by 관리자 posted Dec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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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 겨울이라 그런지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훑어대며 내는 소리는 앙칼지다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된다. 내가 어릴 때는 집이 다 창호지 문이었다. 어쩌다 자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면 파고드는 칼바람의 위력이 대단했다. 칼바람이 매정하게 느껴진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학교는 북한 강변에 있었다.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걸었지만 몸이 부실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바람을 마주해야 했다. 칼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금방 붉어지며 눈물이 솟구쳤다. 뺨을 타고 흐르는 찬 눈물을 삼키며 등 ·하교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바람이 고마운 시간이 있다. 바로 연을 날릴 때이다. 그런 면에서 연날리기는 겨울과 잘 어울리는 놀이이다. 겨울방학이 되면 악동들은 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로 하루를 보냈다. 살을 에이는 듯한 맹추위를 친구삼아 우리는 모이고 뭉치며 겨울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이라고 해야 지금 생각하면 허접하기 이를데 없었다. 비닐우산에서 대나무를 떼어내어 가늘게 잘라내는 작업을 먼저 한다. 대나무 줄기 위에 문종이를 붙이고 중간 뼈대에는 얇은 싸릿대를 활처럼 휘게 해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가오리연을 가장 많이 만들었다. 솜씨 좋은 할아버지를 둔 아이는 방패연을 들고 나타났다. 그 애가 그렇게 부러웠다.

 

 가오리연의 몸통을 만들고 꼬리를 붙인다. 어떤 아이는 연은 잘 만들었는데 꼬리를 너무 길게 붙여 날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따라서 꼬리는 보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균형을 잘 잡아 붙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연을 멋지게 날리려면 언덕배기에 올라야 한다. 등하교길에 만나던 칼바람을 벗 삼아 우리는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른다. 그리고 바람을 등지고 달리며 연을 띄운다. 처음부터 순항을 하면 얼마나 좋으랴! 날기도 전에 고꾸라져 박살이 나고, 나는 듯하다가 빙글빙글 돌아 처박히는 연이 허다하다. 그러다가 떠오르는 연줄을 잡아 본 사람은 왜 그리 추운 날 언덕에 올라 연날리기를 하는지 이해 할 것이다.

 

 서서히 풀러 놓는 연줄을 따라 칼바람이 줄을 타고 연을 하늘 높이 올려놓는다. 까마득히 올라 한 점이 될 때까지 연줄을 풀며 환호성을 지른다. 메아리가 울려온다.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이며 위용을 과시한다. 그리고 어린 날의 꿈도 함께 날린다. 연날리기에는 바람이 필수이다. 바람 없는 연은 아무 의미가 없다. 연은 반대편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땅에서 떠오른다. 연을 다루는 기술이 능숙해 지면 바람은 강할수록 좋기만 하다. 물체가 비행하도록 해주는 힘, 바로 양력이다. 세찬 바람에 의해 연이 올라갈 때마다 연줄을 풀어주고 연이 떨어지면 곧 줄을 잡아당겨 양력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연싸움이다. 짖궂은 녀석들이 잘 날고 있는 연에 접근해서 줄을 끊어버린다. 연줄에 풀을 먹이거나 아교를 칠하는 아이도 있었다. 멀쩡히 잘 날고 있는 연에 접근하여 연실을 올려 걸었다가 재빨리 풀어주면 여지없이 줄이 끊어져 나갔다. 연이 곤두박질 칠 때에 한 아이는 울상이 되고, 줄을 끊은 아이는 승리감에 쾌재를 부른다. 참 묘한 광경이다. 연날리기를 잘하려면 우선은 연을 잘 만들어야 한다. 만든 연을 높이 공중에 띄우기 위해서는 얼레로 연줄을 손으로 잡아당겼다 풀었다 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이것은 비단 연날리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어떤 때이든 얼레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손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문고를 가르치는 스승이 제자에게 물었다. “거문고 줄을 세게 당기면 어찌 되겠느냐?” “줄이 끊어집니다.” 다시 묻는다. “거문고 줄을 느슨하게 당기면 어떤가?” 제자가 대답한다. “흥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 너무 팽팽하면 피곤하고 긴장이 풀어지면 역동성이 떨어진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때로는 유유자적하게, 때로는 초긴장 상태에서 삶의 줄을 잘 조절해야만 한다.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그 바람, 내 인생의 줄을 끊으려고 달려드는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아우르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할때에 어느새 파아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는 극치의 행복감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