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20.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신선한 이름이다.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우선 주어진 기본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하다. 문제는 그 욕구충족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요, 나이가 들수록 그 한계가 점점 넓어지고 높아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욕구 중에 정점은 무엇일까? 안정욕이다. 왜 그리 사랑에 목말라할까? 왜 공부를 할까? 왜 그렇게 돈을 모으려 하는 걸까? 왜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들으려 하고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싶어하는 것일까? 들어가 보면 그 자리에 서고 그것을 가져야만 마음이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안전지대는 존재하는 것일까? 요사이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현상은 싱크홀(Sinkhole)이다. 멀쩡하던 땅이 갑자기 꺼져버린다. 지진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뚜렷한 원인 없이 땅에 구멍이 나거나 커다란 웅덩이가 생기는 현상이다. 두려운 것은 토양 성질이 다양해서 지역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물론 무분별한 공사로 인한 지반 침하 현상으로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 근본 원인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몸이 안좋아 건강진단을 받으러 간다. 먼저 엄청난 양의 피를 뽑아낸다. 검사를 위해 많은 요구를 한다. 이후 이상징후가 있다며 입원하여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이때 가져야 할 태도는 의사의 어떤 지시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불평하면 안된다.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와야 한다. 그 일 뿐이 아니다. 살다보면 귀찮은 시간을 만나게 된다. 그때 “저 사람은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다”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교통경찰이 서 있는 것은 위반딱지를 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안전을 위해서이다. 모든 것은 다 나를 위해 있는 것이다.
누가 진정한 행복을 성취할까? 다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삶의 기술 중에 최고의 기술이다. 그러려면 그릇이 커야 한다. 작으면 못 받아들인다. 큰 그릇이라야 다 받아들인다. 바다는 다 받아들여서 바다이다. 받아들이다 보면 내 안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남의 이야기만 한다.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내 고백을 해야 한다. 이것을 자백이라한다. 나를 풀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희한하게도 내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스로 감동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 일어나는 것이 변화이다.
참된 영성은 나를 들여다보는데 있다. “그때 정말 부끄러웠어요. 무서웠어요. 수치심이 일어났어요. 무거운 죄책감과 의심에 시달려야 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나를 얽매이고 있는 올무를 서서히 풀어내야 한다.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은 나에 대한 믿음이다. 수많은 영성가들이 시도했던 것이 이것이다. 기름은 직접 불이 붙기가 힘들다. 촉매제를 이용하면 신속하게 불이 붙게 된다. 이것이 원소와 원소의 만남이다. 불이 붙으면 엄청난 연기와 냄새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을 화학적변화라고 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달걀이 변하여 병아리가 되는 것이다.
깊은 영성의 세계에 몰입해 보면 욕망과 성취가 상충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인생이 힘들까? 사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깊은 영성은 화학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된다. 환경의 지배받고 살던 내가 이제 그 환경을 조종하며 살게 된다. 이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를 이제 구경하며 즐기는 단계로 들어간다. 이것을 위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72시간이다. 삼일이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72시간이 지나면 신경회로가 바뀐다. 영적 비밀을 깨닫게 된다. 삼일만 견디면 된다. 존재 속에 현상이 들어있고, 현상 속에 존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새해이다. 이제까지 품어왔던 그 욕구는 내려놓고 내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한다. 내 영의 소리에 예민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현상에 휘둘리지 말고 참고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다보면 심령이 새롭게 되어 현실을 넘어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영적 감각이 살아나게 된다. 새로운 영성으로 새해를 새해되게 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