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를 재벌로 만든 원동력은 바로 롯데껌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즐기던 껌 덕분에 그는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이 되었다. 지금이야 껌의 종류도 다양하고, 흔하고 흔한 것이 껌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껌은 고급 식품(?)이었다. 껌 하나만 입에 물면 부러운 것이 없었다. 껌을 처음 맛본 후 껌이 씹고 싶어 애타하던 기억이 새롭다. 우리나라에 껌이 처음 들어온 것은 한국 전쟁에 참여한 미군 병사들에 의해서이다. 내가 어린 시절 미군이 지나갈 때 손을 흔들며 “Hello, Give Me!”하고 외치면 던져주던 것이 껌이었으니까.
지금처럼 껌을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버린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껌을 씹다가 밥을 먹을 때면 밥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봐 상 옆모서리에 붙여 놓기도 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그 껌을 또 씹는다. 밤에 잘 때는 어떠했을까? 벽에다 ‘딱’ 붙여 놓고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나 껌을 떼려하면 잘 떨어지지를 않는다. 간신히 떼어내면 껌에는 벽지가 같이 달라붙어 있었다. 대충 떼어내고 다시 씹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맛이 찝찔하고 이상하지만 우리는 그 정도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희한한 것만 있으면 들고나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이들의 낙(樂)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먹는 음식은 절대 집 밖으로 들고 나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기에 나는 하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그러나 껌은 예외였다. 그것은 엄연히 기호식품이 아니던가? 그날도 벌써 며칠째 고이 간직해 온 껌을 멋들어지게 씹으면서 친구들이 놀고 있는 마당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인식’이 주위에 아이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인식이가 씹던 껌을 손바닥에 놓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껌의 색깔이 빨간색이었다. 그 당시에는 껌 색깔은 다 흰색이었기에 인식이의 껌은 촌놈(?)들의 부러움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는 영악하게도 껌을 크레용과 함께 씹어서 색깔을 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우리 동네 아이들이 씹는 껌은 다양한 색깔로 둔갑을 하기 시작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그 당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며 살았다. 아직도 후유증이 없는 것을 보면 껌과 크레용을 함께 씹어 먹은 것은 크게 해롭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큰 사건이 벌어졌다. 학교에 갔는데 명달리에 사는 아이가 풍선껌을 씹고 나타난 것이다. 그 아이가 껌을 씹다 말고 만들어 내는 풍선은 우리 반 아이들의 경악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한참 후에 만난 「풍선 껌」 풍선은 맘처럼 만들어지지 않았고, 친구의 코치를 받으며 혀를 교묘하게 놀려 만들어 낸 껌 풍선을 보고 스스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씹다보면 나중에는 껌이 삭아버린다. 그때서야 껌을 땅에 묻으며 얼마나 아쉬워했던지. 그런데, 나의 누이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씹던 껌을 손으로 비벼 말아서 “딱,딱” 소리를 내며 가지고 놀다가 그제서야 버렸다. 껌은 갈증과 긴장감 해소에 좋다고 한다. 뇌 순환에도 유익하다나?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경기 중 껌을 씹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돈이 얼마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종종 ‘껌 값’ 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만 한해에 미국인들이 껌 값으로 지출하는 금액은 무려 27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껌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껌 안에 카페인을 첨가시켜 정신 나게 해주는 껌에서 비타민 대신 먹는 껌, 살을 빠지게 해주는 껌, 입안의 냄새를 제거해주는 껌 등 그 종류는 갈수록 다양해져 가고 있다.
다양한 모양과 맛의 껌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풍요 속에서 감사할 수 있음은 껌 하나만으로도 감격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 신격호 회장은 우리가 씹은 껌으로 지상 123층의 롯데월드타워를 세웠다. 껌값이라고 무시해서는 안될 것 같다. 자! 다함께 껌을 씹으며 오늘의 피로를 날려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