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형통과 평안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세 드신 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다 고생한 얘기뿐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보릿고개의 고통을 겪으며 버틴 일, 6 · 25사변을 만나 피난 갔던 일 등. 인생은 예측불가이다. 가끔 우리 시대 유명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한창 잘 나갈때에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 한 채 값이 300만원 할 때에 한 작품을 하면 3,000만원씩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재벌 수준으로 살아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단다. 분명히 내 것인데 어느 순간 손에 움켜쥔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 돈인 것 같다. 마음 먹은대로 인생사가 풀려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2020년! 누구나 희망에 가득 차서 새해를 가슴에 안았다. 출발을 했는가 했는데 갑자기 질병이 세계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사방에 꽃이 만발하며 봄을 알리고 있건만 세상은 모두 얼어 붙어버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며 다들 빗장을 걸어 잠궜다. 사람을 가까이하면 안 된단다. 웬만하면 집에만 있으란다. 상점과 식당, 위락시설이 모조리 문을 닫았다. 어려운 상황이 더해가는 유럽에서는 한 노인이 “2차 세계 대전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고 한숨을 짓는다. 실로 소리 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다가 이웃끼리 마음의 문까지 닫힐까 걱정된다.
도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눈만 뜨면 온통 바이러스 확진 환자 소식뿐이다.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AI)이 어떻고, 핸드폰 7G가 어떻고, 우주를 오가며 대단해 보이던 인간의 능력이 이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이럴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문인협회 회원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고령이기에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님, 저는 요사이 너무 행복해요.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나가지도 못하고 해서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책에 빠져 삽니다.” 평소에도 느꼈지만 참 멋진 분임을 새삼 깨달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때에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위기를 한자로 보면 ‘위험할 危와 기회 機’이다. 풀이하면 ‘위험하지만 기회’란 뜻이 된다. 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싶다. 위기는 스승이라고. 위기를 당하면 사람들은 낙심한다. 당황한다. 하지만 그 위기를 통해 새로운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위기는 위대한 스승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교만을 잡아내야 한다. 사람들이 교만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기의 능력을 과신할 때요, 다른 하나는 가진 것이 많을 때이다. 권력, 건강, 지식, 물질을 풍부하게 소유 할 때에 교만에 빠지기 쉽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겸손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면 소망의 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
내 개인적인 삶에도 위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이도저도 방법이 없을때에,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때에 많이도 울었다. 오산리 금식기도원 기도굴에서 밤새 기도하며 눈물로 바닥을 적시던 때가 있었다. 찾아갈 곳도, 와주는 사람도 없는 깊은 고독 속에서 나 홀로 일어서야만 하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자존심이 다 무너지고, 노력했던 모든일들이 허망하게 수포로 돌아가 버린 그 밤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토해내던 때가 있었다. 그때 다 끝나는 줄 알았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안되는 인간이구나!’ 절망하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또 일어섰다.
그런 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겸손을 배웠다. 기도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깨달았다. 신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도 알았다. 장애인으로 장애인들과 함께 뒹굴며 살아온 세월이 18년이다. 누구보다 행복한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이다. 위기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친다. 거듭나게 한다. 성숙하게 한다. 그래서 끌어안아야 하고 금방 지나가기에 잘 참고 견뎌야 한다. 위기가 스승인 것을 아는 것- 그것이 가장 고상한 통찰력인 것이다.
위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된다. 보통 때는 숨어계시던 하나님이지만 위기 때는 나타난다. 그래서 위기는 위험하지만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