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가고 있다. 이제 곧 그 손길은 더운 여름 기운을 끌어오겠지. 봄은 보여서 봄이다. 겨울내내 숨겨져 있던 대지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며 여기저기서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꽁꽁 얼어붙어 고요하던 산골짜기에 요란한 시냇물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버들강아지에 움이 돋고 나무마다 연두색 향연이 시작된다. 물감을 뿌려놓은 듯 산세가 아름다워진다.
겨울이 끝나 가는가 싶으면 희한한 조바심을 내며 자주 창밖을 보게 된다. 긴 시간 창문 틈새에 붙여놓았던 테이프를 떼어내며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본다. 코끝을 스치는 상큼한 공기, 나뭇가지 끝에 피어나는 연초록 새싹, 그리고 그 위로 내려앉은 부드러운 햇살이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든다.
아직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초록빛이 번질 무렵, 마음 한구석이 간지럽다. 미세하게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바람 끝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봄이 소중한 것은 몹시도 지루하고 추웠던 겨울나기 때문이었으리라! 봄뿐일까? 인생도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성장이 멈춘 것 같고, 길이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무언가는 자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희덕 시인의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가 떠오른다.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빨래 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 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봄의 다른 이름은 ‘시작’이다. 누군가에겐 새 학년,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이사나 직장, 사랑일 수도 있다. 봄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다. 실패했던 어제도, 후회로 얼룩진 암울했던 지난날도, 봄 앞에서는 새롭게 덧칠할 수 있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다양한 꽃이 만개하는 계절이 봄이다.
꽃을 보고 미소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 봄은 실로 생명으로 대지를 덮어가는 신비의 계절인 것이다. 다들 꽃을 보기 위해 분주히 나들이를 나선다. 무엇보다 벚꽃은 바람에 흩날리며 잠시나마 세상을 환상처럼 바꿔 놓는다. 그러면서 꽃이 인생에게 삶의 본질적인 기쁨을 안기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누구나 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알러지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고역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황사가 기승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고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생명력과 희망 때문이다. 봄은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 그것이 바로 봄의 위로이며, 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짧은 계절이지만, 봄은 언제나 우리 삶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따뜻한 햇살 아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피어나는 꽃을 바라본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생동을 느낀다. 다시 살게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봄에 숨어있다. 봄은 단순한 계절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변화, 시련 뒤에 피어나는 희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상징이다.
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봄의 순환 속에서 자연이 전하는 가장 따뜻한 조언이기도 하다. 겨울이 품었던 침묵은 봄의 노래로 변했고, 대지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봄은 묵묵히 말 없는 교사가 되어 우리에게 인생의 진리를 가르친다.
기다림의 의미, 변화의 용기, 균형의 중요성, 관계의 소중함, 시작의 희망, 그리고 일상의 기쁨까지. 결국 봄이 주는 가장 큰 음성은 “삶은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다.”이다. 봄을 끌어안으며 고백하고 싶다. “기다림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