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눈길을 끌던 것은 단연 CC(Campus Couple)였다. 같은 학교를 다니며 교제하는 이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누군가를 의식하고 챙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교제하던 커플이 결국 부부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요즘은 ‘BC’라는 말이 생겼다. ‘복지관 커플(Bokji-gwan Couple)’을 뜻하는 신조어다.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복지관에서 생겨나는 커플을 이르는 말이다. 남녀 간의 정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해서, 사랑은 마치 재채기처럼 숨길 수 없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남성 노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할아버지는 3위가 돈 많은 할아버지, 2위가 잘 생긴 할아버지, 그리고 대망의 1위는 매너 좋은 할아버지다. 반면 여성 노인들 사이에서는 예쁜 할머니가 단연 1위다. 남자들은 여전히 외모지상주의자들인 걸까?
인류의 발전은 예절의 발전과 비례한다. 이는 곧 인간의 의식 수준이 성숙해질수록 예절 역시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예절은 사람이 사람답게 행동하기 위한 기본 질서이며 동양에서는 이를 ‘예의범절’이라 불렀다. 우주는 놀라울 만큼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태양이 가는 길이 있다. 이를 ‘황도’라고 한다. 지구에서 바라볼 때 태양이 1년 동안 별들 사이를 지나가는 경로이다. 지구의 길도 있다. 공전 궤도라 부른다. 바람이 가는 길, 물이 흐르는 길이 있으며, 구름이 움직이는 길도 있다.
주먹이 가는 길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태권도다. 붓이 가는 길을 서도(書道)라고 한다. 마시는 차가 가는 길, 그것은 다도(茶道)이다. 이렇듯 모든 것에 길이 있다면, 사람이 가야 할 길도 있지 않을까? 바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남자로서, 여자로서 지켜야 할 길이 있고, 어린이로서, 청소년으로서, 청년 · 장년 ·중년 · 노년으로서 각각 지녀야 할 삶의 예절과 도리가 있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에도 요령이 있고, 화장실을 사용할 때의 예절이 있다. 친구들과 지낼 때의 예의가 있고,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 길을 잊은 듯하다. 한국에 갔을 때, 이른 아침 지하철 안에서 누가 보든 말든 보란듯이 짙은 화장을 하는 여성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이기 때문일까?
아주 오래 전, 동양의 어른들도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예절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예기(禮記)』라는 책을 만들었고, 나아가 『소학(小學)』이라는 책으로 집대성하였다. 이 책을 정리한 주희는 58세, 유청지는 49세였다.
서양에서는 어땠을까? 매너와 에티켓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이다. 16세기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소년들을 위한 예절론』이라는 책을 통해 매너와 예절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러한 문화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집대성되었다.
메디치 가(家)는 세계 각지에서 책을 수집했고, 결국 자신들만의 도서관을 만들 정도로 지식과 정보를 집중시켰다. 그 안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예법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말하는 법, 걷는 법, 앉고 서는 법, 먹는 법, 마시는 법, 심지어 포크를 사용하는 매너까지. 당시 유럽 사람들은 손으로 식사를 했지만 최초로 포크를 사용한 이들은 메디치가였다. 이것이 프랑스 궁정으로 전해지며 에티켓의 본고장은 결국 프랑스가 되었다.
옛사람들은 공부의 기본으로 ‘소쇄응대(瀟灑應對), 진퇴지절(進退之節)’을 강조했다. 말과 행동을 맑고 산뜻하게 하고, 사람을 공손히 맞이하며, 나아가고 물러날 줄 아는 분별이 있는 태도. 이런 공부가 빠진 지식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도 같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매너 교육, 예절 강의, 에티켓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매너는 개인과 사회를 행복으로 이끄는 진정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환영받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려면 매너있는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