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련한 추억을 되살아내게 하는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일 포스티노> 이태리 말로 “우편배달부”이다. 1950년대 칠레에서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이탈리아의 작은 어촌 마을에 머물게 된다. 이 마을의 젊은이 마리오 루오폴리는 실직을 하고 꿈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우연히 우편배달부(일 포스티노)로 일하게 되면서 그의 삶에는 조용한 파장이 일기 시작한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며, 매주 답지하는 팬레터를 받아보는 그의 모습이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 순박한 마리오를 좋게 본 유명 시인 네루다는 그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받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매일 시인에게 편지를 배달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시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시에 심취한 마리오는 공부와 노력을 다하며 더 많은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느날, 마리오가 시인 네루다에게 묻는다. “시가 뭔가요?” 네루다는 시에 대해 직설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시는 은유와 감성으로 느끼는 것”임을 알려준다. 네루다에게 시의 아름다움과 메타포(은유)를 배우게 되면서 마리오는 자신이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다. 시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자 자신의 삶도 변화시키려는 곳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간다.
처음엔 단순한 배달부와 손님의 관계였던 마리오와 네루다는 점차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시”(詩: poem)을 매개로 진정한 인간적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이다. 네루다에게 은유에 대해 배우고, 사랑을 표현하는 시적인 언어를 익혀나간다.
마리오는 평소 사모하던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시를 통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베아트리체는 그의 이상형이자, 삶의 활력이었다. 시 한편을 건네주게 되는데 베아트리체에 마음이 열리며 둘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영화는 시와 사랑, 정치적 망명, 그리고 평범한 인간의 성장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 나아간다. 연기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감탄을 절로 나온다.
평범한 집배원이었던 마리오가 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가는 과정은 진한 감동으로 물결쳐 온다. 잔잔한 영상미와 감성적인 음악, 그리고 시가 가진 힘에 대한 찬미가 어우러진 명작이다. 삶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진실을 시적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그 꿈 같은 시간도 잠시. 네루다가 정치적 상황이 나아지면서 칠레로 돌아가게 되자 마리오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정들었던 사람이 떠나갔을때에 서운함, 허탈감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그에게 네루다의 자리는 너무도 컸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그래 그렇지. 사람이 잘 나가면 다 잊어버리는 거야!” 중얼거리며 그의 서운한 마음에 공감했다. 인생을 살아오며 마음을 나누고, 온갖 추억을 공유했던 친구들, 동료들, 연인들. 지금은 다 어디에 갔는지? 인생은 그렇게 숱한 이별을 경험하며 엮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영화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정치망명자에서 일약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된 네루다가 다시 마리오를 찾아온 것이다. 실로 금의환향이었다. 아내 베아트리체를 통해 안타까운 마리오의 소식을 듣게 된다. 비록 다시 만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시, 목소리, 발자취를 따라간다.
영화는 전쟁, 정치,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시적인 분위기 속에서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마리오의 삶은 비극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영광스럽기도 한 생애였다. 위대한 시인은 아니었지만 마리오는 시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일 포스티노》는 말한다. 시는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삶의 언어라고. 시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섬세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이 영화는 한 편의 시처럼 가슴에 잔잔히 스며든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당신만의 ‘은유’를 가지고 있느냐?”고. “당신의 삶을 시처럼 느낀 적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