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요? 그것 정치인들이 자금 모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북콘서트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지인이 내뱉은 말이다. 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나도 북콘서트가 무엇인지 모르고 일을 벌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출판 감사와 콘서트라고 했어야 맞다. 생각만 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출판은 속전속결로 이루어 졌다. 연말에 초안이 나오면 새해에 책을 발간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내년은 대기하고 있는 일이 너무도 많다. 내친김에 책 발간에 박차를 가했고, 드디어 10월 중순, 가을이 깊어 가던 어느날, 책이 내 가슴에 안겼다. 감격스러웠다. 책을 펴들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 영광을 돌리는 자욱을 남겼다. 그렇게 첫 번째 책에 싸인을 한 이다. 많은 분들이 책을 낸다. 친구 목사들도 저서를 집필했다. 대개 설교집이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주간필라와 인연을 맺어 21년째 매주 글을 싣는 칼럼리스트가 되었다. 솔직히 등단한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며 새삼스러운 절차인 것 같아 망설이다보니 시간이 지나갔다. 오로지 필라 동포들의 사랑 속에 자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가끔 팬이라고 다가오는 분들의 리액션이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다. 마트에서 마주친 분이 “어, 맞지요? 주간필라 글 쓰시는 분?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로 답한다.
사람들에게 그냥 책을 배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다가온 첫 수필집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다. 목사로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정성을 드리고 싶었다. 예배로 책을 하나님께 헌사 한 후, 나의 작은 재능을 발휘하며 뭔가 의미있는 콘서트를 기획하기에 이른다.
날을 잡고 순서를 맡기는 일에 부담이 느껴졌다. 내 주위에는 많은 분들이 있다. 뉴욕에서 목회하는 박희근 목사가 생각났다. 목회자의 아들로 업을 이어가는 친구. 신학대학원 동기니까 어느새 42년 우정을 나누는 그에게 설교를 맡겼다. 북콘서트의 별미는 서평이다. 이제 연세가 드셔서 현역에서 물러나셨지만 나의 초등학교 은사 윤철환 목사님이 적격이었다. 또 한분, 서재필재단 회장을 감당할때에 세대를 초월하여 만난 벗(?) 정홍택 장로님.
역시 박 목사는 위트와 지혜를 모아 좌중을 압도하였고, 윤 목사님은 소개와 더불어 단에 오르는 순간부터 존재감이 묵직했다. 정 장로님을 벗이라 함은 한참 연배지만 언어, 서적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이요. 대화의 폭이 넓고 깊고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당시 내게 건네주던 송창식의 CD <선운사>는 전율을 느낄 정도의 가사, 창법, 리듬으로 나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북콘서트 당일. 어둡고 쌀쌀한 초겨울. ‘얼마나 모여올까? 오늘 콘서트는 과연 얼마나 반응을 얻을까?’ 기대반, 염려반으로 막을 올렸다. 결과는 성황이었다. 몽고메리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순박하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하였다. 예배. 은혜스러웠다. 2부 콘서트 무려 일곱 곡을 부르며 겨울밤을 녹여갔다. 내 인생을 반추하는 시간이요, 2살 때 소아마비로 평생 장애를 입고 살아온 한 사나이의 춤추며 노래하는 시간이었다.
책명 “나는 춤추면서 걷는다”는 가슴저리는 나의 인생고백이요, 신앙간증이다. 상황은, 환경을 쉽게 바뀌지 않는다. 처지도 그렇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면 생의 방향은 급진전한다. 진정 나는 예수 믿어 운명이 바뀐 사람이다. 예수를 만나 영안을 뜬 장본인이다. 신앙이 나를 춤추게 만들었다. 북콘서트에 함께 했던 분들의 공통적인 소감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고맙다. 정말 힘들었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한걸음한걸음 내디디다보니, 춤추다보니 희열의 시간이 다가왔다. 책 한권에 내 생을 꾹꾹 눌러 담아보았다. 추운 겨울 밤, 함께 기도하며, 커다란 박수로 격려해 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외친다. 일어서라고, 함께 춤을 추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