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내가 대장이고 아내는 결정권자이다. 나는 내 의사로 옷을 사본 적이 없다. 넥타이가 어림잡아 200개는 더 될 듯 싶다. 아내가 토요일마다 거라지 세일에서 내 취향에 맞는 멋진 타이를 곧잘 골라온다. 감사한 일은 세계 곳곳을 집회 인도 겸 여행을 다녀도 선물을 사올일이 거의 없다. 초창기 정성껏 선물을 골라 사왔더니 “이런걸 뭐하러 사오냐?”고 핀잔을 주어 이제는 아예 빈손으로 돌아온다. 소박한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리다.
젊은 날에는 내가 결정하면 끝이었다. 나이가 드니 아이들도 다 엄마 편이고, 내 스스로 무언가 결정할 수도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고 아내가 전적으로 육아를 하면서 벌어진 판세이다. 어쩌다 손자, 손녀들을 만나도 나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안아주고 말벗을 해주다가 내 스스로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아내는 참 귀하다. 매일 출근하여 손주들을 돌본다.
그러니 이제 아이들은 다 엄마 제일주의자들이 되었다. 보기는 좋은데 왠지 마음이 씁쓸해 진다. 아빠라면 항상 다정하게 친구처럼 다가와 주던 아이들이다. 매일 전화해 주고 회사로 나오라고 해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웃던 아이들이다. 이제는 오로지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느라 매일 애쓰는 엄마가 고맙기 그지 없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설교를 다니며 넋두리처럼 해 대던 말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디나 쓸모가 많다. 아이도 보아주고, 음식도 만들고, 청소와 빨래도 해 주고. 할아버지는 쓸데가 없다. 하는 일도 없고 아이보라면 오히려 손자들과 과자를 놓고 싸운다.” 그런데 이제 나에게 현타가 왔다. 무언가 만회를 해 보려 하지만 체질적으로 움직이질 않는다.
돌아보면 신혼때부터 내 횡포가 심했다. 시도때도 없이 친구들을 몰고 들어왔다. 음식 솜씨가 좋은데다 손이 빠른 아내는 싫은 표정없이 손님맞이를 했다. 나는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어머니도 며느리가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여기저기 집안 대소사에 아내를 대동하고 다니셨다. 시간이 흐르며 아내는 힘들어했다. 어쩌다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시어머니 비유도 못 맞추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세월이 흘러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결혼 40년이 지나니 남자 신세가 꼭 비에 젖은 낙엽 꼴이다. 뭐라고 해도 말이 안 먹힌다. 이제는 아내가 결재를 해야 일이 진행된다. 기나긴 세월 속에 어느새 아내가 결정권자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는 반격을 시도할만한 힘이나 무기도 없으니 아예 포기해 버렸다. 굳이 그러기도 싫다.
이런 작은 일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쩨쩨해 보여서 물러서다보니 이제는 전의상실이다. power struggle이라고 하기는 좀 지나치지만 밖에서 진취적인 삶을 사는 내 모습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를 생각한다. 큰 기침 하나면 집안 분위기를 평정하던 그분들의 호기가 멋지고 그립다. 작은 것 하나도 아내의 동의없이는 결정되는 것이 없다.
Oscar Wilde는 “여자의 역사는 최악의 형태의 폭정의 역사이며, 이것이 약자가 강자에게 휘두르는 폭정으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홀로 쇼핑을 해 오면 “뭘 그런 것을 샀느냐?”고 야단을 친다. 가스라이팅일까? 이제는 물건을 사는 능력이 아예 상실되어 버린 것 같다. 무언가 선물을 하기보다 현찰이 편하다. 아내가 사고 싶은 것, 마음에 드는 것을 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을 하고 지인들을 만나고 싶어도 건강을 핑계로 손사래를 친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를 선호하는 나와는 상반된 성격의 아내는 집순이이다. 홀로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던 내가 듣는 소리는 “사모님은 왜 같이 안 오셨어요?”이다. 항상 부부가 동행하는 분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결혼 40주년 기념 여행도 무산될 것 같다. 그래도 명품, 사치와는 거리가 먼 소박한 아내가 존경스럽다. 내 곁에서 묵묵히 40년을 살아오며 내조 해 준 아내가 너무도 고맙기 그지없다. 아내 덕에 오늘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