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아름답고 포근한 달이다. 또한 가정의 달이다. 이때 쯤 불러보고 싶은 이름이 있다. 경찰 정복을 입으시고 미소지으며 퇴근하던 모습. 워낙 부지런하셔서 텃밭 일구시어 거름주고 고랑 만들어 온갖 모종을 심으며 등에 땀 냄새 나던 아버지. 가끔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데펴들고 들어와 가느다란 내 발을 씻어주고 발톱을 다듬어 주던 아버지. 아버지!
가을이면 책상 밑에 싸리나무 울을 치고 고구마를 가득 담아 놓으셨다. 한겨울 우리 가족은 간식으로 그것을 즐겼다. 겨울이 오면 손수 썰매를 만들어 내 품에 안겼다. 책상 다리를 하고 힘껏 꼬챙이를 저으며 신나게 얼음을 지쳤다.
엄했지만 지그시 저 너머에서 장애를 가진 아들을 지켜보던 거인. 내색 안하시며 아버지는 친구들과 약주를 드실때면 은근히 아들을 자랑하셨다. 경찰이면서도 동네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던 분. 가을 농악놀이를 할때면 솔선하여 꽹과리를 손에 잡고 분위기를 주도하던 분. 너무 젊은 나이에 가셨건만 지금도 우리 삼남매가 모이면 하는 말 “우리 아버지는 멋졌어!”
55살 그분은 중병을 얻어 떠나갔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떠난 것임을 깨닫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시는 경찰분야가 정확히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도둑도 잡아야 하고, 통금도 감독해야 했다. 간첩도 잡아야 하고 건물 준공검사까지 해야 했다. 대통령이 지방 시찰을 갈때면 동원되어 일정 간격으로 기찻길을 지켜야만 하였다. 엄마 심부름을 하는 핑계로 지소(파출소)를 자주 드나들었고 아버지가 범인을 취조하는 현장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나도 이미 오래전부터 남자의 성장사(成長史)를 경험하며 ‘극복’이라는 과정을 겪어가며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아버지는 울 곳이 없다고 한다. 같이 울어줄 사람도 없고 또한 우는 걸 들켜서도 안되겠기에 아버지는 가슴으로 운다. 평생 나의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야 한다. 내 등 너머에서 얼마나 그분은 울며 기우뚱거리며 걷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셨을지.
엄마의 존재는 ‘눈’으로 오지만 아버지의 존재는 ‘등’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아버지의 등에서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울지 않으셨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으시고 등에서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울음인 것을.. (하청호 시인의 “아버지의 등”)」
어머니는 말과 표정에 실어 나타내는 사랑이다. 엄마에게 표면적인 사랑을 많이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情)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무심한 아버지라 오해받기도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꽃과 같고 아버지의 사랑은 나무와 같다.
나는 아버지를 “아부지”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엄마”로 불렀다. 내 나이 22살, 아버지가 떠났을때에 홀연히 새 아버지가 나를 입양해 주셨다. “하나님”이다. 나는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진정 아버지로 내 인생을 풍요롭게 인도해 주고 계신다. 구약성경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표현한 것이 15회, 신약은 170회나 된다.
아버지는 기다리는 분이다. 묵묵히 은근히 마음 졸이며 자식을 지켜보며 기다린다. 1,400만명이 관람한 영화 ‘국제시장’(2014년 개봉, 윤제균 감독)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덕수(황정민)가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독백을 한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어버이날 자식들이 가슴에 달아 준 가벼운 카네이션 꽃. 아버지가 일찍 떠나갔기에 내 삶은 곤고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속에 그분에 대한 좋은 감정만 살아있기에 문득 보고 싶다. 그분을 불러본다. 아버지, 그리고 이내 내 외침을 이렇게 흘러간다. 아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