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밀알은 봉사하는 분들의 정성으로 사역을 이어간다. 그분들의 애씀을 인정해 줄 때에 환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며 웃는 것은 인정을 받기 위함이다. 인생의 긴 시간을 지나온 노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순간에도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가치 있는 존재인가?”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사람은 인정받기를 원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의 눈빛과 말과 태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따뜻한 시선은 사람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지만 차가운 무시는 존재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따라서 인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지탱하는 가장 깊은 힘이다. 식탁을 물리며 아내에게 “오늘 넘 맛있다. 역시 당신의 음식 솜씨는 최고야!”라고 말해 줄 때 아내는 구름을 난다. 어머니가 그리운 이유는 엄마 품에서 느끼는 따뜻함과 위로가 마음속 깊은 곳에 안정감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받을 때 비로소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받아 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들여다보면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배고픔으로 일생을 산다. 가까이는 가족들로부터 범위를 넓혀 날마다 교제하는 공동체 안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들려오는 나에 대한 소문이 긍정적일 때 사람은 삶의 의욕이 충만해 진다. 나는 설교자이다. 설교 후 가장 많이 받는 인사는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혹은 “오늘 너무 좋았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습니다.”에서 엄지척을 해 오는 성도들의 반응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자존감이 높아진다.
충분한 인정과 위로를 받지 못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사람은 평생 누군가의 따뜻한 이해와 공감을 갈망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인정은 사랑에만 머물지 않는다. 존경 받을때에 행복의 극치를 느낀다.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다고 느낄 때에 참 행복이 스며드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사회운동과 저항 역시 인정의 요구에서 시작되었다. 여성들이 차별에 맞서 목소리를 낸 것도,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요구한 것도, 인종차별에 저항한 것도 결국은 같은 외침이었다. “우리도 인간이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존엄을 회복하려는 절실한 외침이었다. 인간은 빵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이 사라질 때 삶의 의미 역시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민 사회에는 각종 모임이 많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공동체 안에서 확인하려는 의중을 본다.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인정받을 때 깊은 기쁨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당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일이 잘 되었습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어보라! 내 존재가치를 깊이 깨닫게 된다. 아주 짧은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따라서 인정은 인간의 마음을 살리는 힘이다.
현대 사회는 점점 인정에 인색해지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평가하려 한다. 공감하기보다 비교한다. 열심히 살아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쉽게 지쳐 버린다. 다시 살아갈 힘은 거창한 성공보다 따뜻한 인정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인정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윤리이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거대한 세상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일, 작은 수고를 기억해 주는 일, 따뜻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봐 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어쩌면 좋은 사회란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바라보는 사회일 것이다. 경쟁보다 연대가 살아 있고 냉소보다 존중이 더 큰 힘을 가지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하다. 서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인정은 인간을 숨 쉬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며 서로의 존엄을 발견하게 하는 가장 따뜻한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