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밀알선교단 지체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지만 감사하게도 매년 초청해 주는 교회가 이어져 집회 인도를 하기 위해서이다. 장애가 있지만 비행기를 타거나 이동을 하는데는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 비밀은 보조기를 착용하기 때문이다. 처음 사용할 때에는 큰 고통이 동반되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포기하려고 한적도 있었다.
이제는 보조기 없이는 보행이 불가능하다. 덕분에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간증을 하고 말씀을 전파한다. 2019년, 아르헨티나 밀알의 밤 강사로 찬양과 말씀을 전하고 피로에 지쳐 깊은 잠에 떨어졌다. 새 아침이 밝아 숙소 커튼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에 눈을 떴다. 그러면서 깨달음이 왔다. 불현 듯 젊은 날 기도원에 올라 드렸던 기도가 생각이 났다.
“주여, 나를 세계적인 말씀의 종으로 써주소서!” 남미 끝 아르헨티나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 꿈이, 그 기도의 제목이 드디어 성취되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감동이 밀려왔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한 나약한 장애인을 땅끝까지 이르러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어디를 가나 설교를 하며 찬양을 올린다. “너는 내 아들이라!” 찬양의 가사는 어쩌면 내 인생을 훑어놓은 듯 가슴을 타고 흐른다. 강단에 오르는 내 모습을 보고 찬양을 들으며 대두분의 성도들은 손수건을 꺼내 든다. 그리고 한없는 위로와 소망을 누린다. 그래서 행복하다. 진정 상처입은 치유자로 쓰임 받음이 너무도 행복하다.
지난 4월 한국을 찾았다. 중순까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순조롭게 집회를 이어갔다. 가장 큰 행사인 북콘서트도 안양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문제는 19일(주일)에 일어났다. 광명에 있는 <주동행하는 교회>(송영식 목사 시무) 설교를 위해 교회에 당도하였다. 도착하여 발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다리에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났다. 보조기가 부러진 것이다. 더 이상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난감했다.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야 하는데 큰일이었다.
담임 목사님에게 사정을 알렸다.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이내 휠체어를 대동하고 간신히 단에 올랐다. 안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성도들의 마음을 안도시키기 위해 태연하게, 더 당차게 설교를 하고 찬양을 올렸다. 성도들은 한없는 은혜를 받는 분위기였다. 망가진 보조기는 교회에 버려야만 하였다. 수리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이전에 사용하던 보조기를 급히 붙여달라고 했다. 이후 나는 이전처럼 손으로 오른쪽 허벅지를 집으며 걸어야만 하였다. 보조기를 찼을때보다 10배나 힘이들었다. 대전에 집회가 잡혀 강남고속터미널에 당도하였다. 보조기를 차고는 몇초면 당도하던 게이트에 20분 이상이 요동치며 걸어야 했다.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상경할때는 일부러 남부터미널로 표를 끊었다. 택시 타기가 강남터미널보다는 더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택시승강장에 가까이 다가가자 대기하던 차가 떠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뒤에 서 있던 택시도 줄행랑을 놓았다. 난감했다. 이후 다가온 택시 기사가 직접 내려 내 캐리어를 실어주고 숙소로 출발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걸려서야 사용하던 보조기가 도착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보조기를 차고 걸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단 일주일에 기간이었지만 내게는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는 실감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인들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요원하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감사한 마음이 밀려온다. ‘아, 나는 진정 나약한 장애인이요, 지극히 작은 자였구나!’ 여전히 나는 춤추면서 걷고 있다. 그러면서 나의 나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한국 여정이 내 인생을 더 깊게 만들어 주었음을 깨닫는다. 약하기에 강하게 하시는 그분의 만져주심을 가슴으로 느끼며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