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마음을 가진 존재이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달라진다. ‘세상 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나는 내가 장애인인 줄 모르고 자랐다. 가정 환경이 큰 도움이 되었고, 내 스스로의 자존감 때문이었다. ‘뭐가 어때서?’ 이를 악물면 겁날 것이 없었다. 일단 운동은 안 해 본 것이 없다. 축구를 하면 나는 골키퍼를 자원했다. 농구를 하면 멀리서 슛을 쏘았다. 탁구는 수준급이었다. 턱거리는 누구의 추종도 불허했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내 삶이 되었다.
운전을 하다가 가끔 노숙자들과 마주친다. 도와달라는 커다란 쪽지를 들고 모퉁이에 서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 부야가 치민다.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그런 구차한 삶을 사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가기 때문이다. 물론 기가 막힌 사연이 다 있으리라! 하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사는 내 눈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일단 당당한 삶을 살려면 탓에서 벗어나야 한다. ‘~~ 때문에’를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이래서 어떻고,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 쓸모 없는 일이다. 내 삶에 어려움이 생긴 것은 내 문제이다. 장애가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취업을 희망했다. 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 받아들였다. ‘내가 사장이라도 건강한 일군을 뽑겠지’
어릴 때 성장 한 교회에서 전도사 임명을 받아 사역하다보니 한계를 느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들, 선, 후배들. 게다가 항상 나를 어리게만 보는 장로, 권사님들.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사역지를 찾았다. 면담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어느 교회에서도 나를 청빙해 주는 교회는 없었다. 하지만 더 좋은 길이 열리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렸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처절한 시간을 지낸 분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얼굴이 벌개져서 나도 아는 그 분에 대한 분을 토해냈다. 아무 소리도 안 했다. 그냥 듣고만 있었다. 가끔 추임새는 넣었다. 상심이 크면 남의 탓을 하며 자신의 삶을 변호한다. 아니 변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 남의 탓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내 마음이 메마르면 시선이 남을 향한다. 마음이 불안해도, 외로울 때도, 불평과 불만이 올라 올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바쁘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 아니 아무 생각없이 루틴을 따라 산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전기가 없었다. 교통수단도 없었다. 따라서 삶의 속도가 느릿느릿했다. 저녁은 항상 일렀다. 어른들은 일을 하기에 피곤해서 일찍 잠을 청하지만 어린 우리들은 에너지가 충만했다. 캄캄한 밤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놀이를 즐겼다. 덕분에 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은하수를 보며 자랐다.
귀뚜라미 소리, 앵앵대는 모기, 개짖는 소리, 처마 밑으로 흐르는 빗소리, 바람 소리, 바람에 떨리는 문풍지 소리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였다. 모든 자연이 우리들의 장난감이었다. 만지고, 따고, 먹고, 뒹굴고, 떠들고 그렇게 우리는 부자가 되어갔다. 장례가 나면 구경거리가 풍성했다. 줄지어 찾아오는 조문객들. 가족, 친척들, 아낙네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준비하다가 마당에 들어서며 울부짖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다가 함께 눈물을 훔쳤다.
그래서 나는 정(情)이 귀한 것을 알았다. 실속도 중하고, 체면도 귀하겠지만 사람들간에 오가는 정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말투가 부드럽지 못하다. 일단 목소리가 크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타입이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소중한 분들이 너무도 많다. 서로 정이 통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감기라는 우울증은 어디서부터 올까? ‘때문에’가 원인이다.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산다. 탓하는 순간부터 내 행복은 풍선처럼 날아간다. 나의 정의로 세상을 단죄할 때 ‘악마의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 받아들이자. 어떠한 아픔도 사랑의 눈으로 해석하며, 필요하기에 주어진 과정임을 받아들이자. 그러면 새로운 행복이 저만치서 밀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