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밤은 수많은 불빛으로 반짝인다. 높은 아파트 창문마다 불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 불빛 안에는 저마다 다른 삶이 숨어 있다. 가족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하루의 피곤을 풀어내는 대화가 이어지는 가정이 있다. 그런데 여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작은 원룸 안에서 홀로 늦은 저녁을 먹고 혼자 TV를 켜고 잠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그것은 특별한 풍경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초 1인 가구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좁은 집 안에서도 형제들이 뒤엉켜 잠을 잤고 어머니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소리와 아버지의 기침이 밤의 배경처럼 익숙하게 들려왔다. 밥상은 북적였고 누군가의 젓가락 소리조차 살아 있다는 감각이 되었다.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외롭지 않았다. 함께 어우러지고 함께 견디는 것이 삶이라고 믿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변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경제성장을 일으켰다. 언제부터인가?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관계보다 생존이 우선이 되었고 가족의 형태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혼 적령기는 현격하게 늦춰졌고 따라서 출산율은 현저히 낮아졌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며 혼자 사는 것이 보편적인 생활 방식이 되어버렸다.
“나 홀로 산다”는 유행어처럼 번져나갔다. 작든 크든 자신만의 공간을 꾸민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렵지만 시간이 지나며 혼자의 리듬에 익숙해진다. 혼자의 삶은 분명 자유롭다. 혼자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자유는 생각보다 달콤하다는 것을. 누구에게 맞추지 않아도 되는 삶은 편안하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은 때로 큰 해방감이 된다.
하지만 자유는 늘 외로움과 함께 온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불 꺼진 방의 문을 열 때. 하루 종일 직장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지냈는데도 정작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고립되어 살아간다. 홀로 사는 사람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때는 몸이 아플때이다. 열이 나도 스스로 병원에 가야 하고 몸살로 쓰러져도 물 한 잔 떠다 줄 사람이 없다.
도시는 점점 나 홀로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혼밥 식당이 늘어나고 무인 카페와 무인 편의점이 생겨난다. 기술은 삶을 효율적으로 만들었지만 사람 사이의 온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사람 냄새가 있었다. 안부를 묻고 웃으며 흥정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화면을 터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편리함은 커졌지만 관계는 줄어들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의 변화이며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 사람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제는 그것이 마냥 미덕이지 않다. 홀로 살면 일단 자유롭다. 문제는 자유가 깊어질수록 관계의 책임은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관계의 존재이다. 편한 것보다 마음은 누군가의 온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초 1인 가구 시대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혼자의 삶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는 동안 사람은 단단해진다.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시대임이 틀림없다. 차를 몰고 밤늦게 귀가할 때가 있다. 지나치는 집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다가 빨간 신호등 앞에 서면 순간 상념에 잠긴다. 저 안에 누군가는 혼자의 자유를 즐기며 웃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깊은 침묵 속에서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같은 혼자여도 삶의 온도는 다르다.
초 1인 가구 시대는 결국 인간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은 어디까지 혼자 살아갈 수 있는가? 기술과 편리함이 사람의 온기를 대신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을 갈망하며 살고 있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인해 살아갈 힘을 얻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 관계의 온기가 사라질 때 도시는 아무리 화려해도 차가운 섬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