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다. 선뜻 중복이 다가왔다. 복(伏)하면 삼계탕이나 보신탕이 생각나는 나는 영락없는 옛날 사람이다. 더위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몸도 마음도 늘어지는 시기이다. “삼복더위에는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여름이면 보양식을 떠올린다.
한창 청년들을 지도하고 있을때에 회장이 나를 회사 근처로 초대했다. “정말 맛있는 삼계탕을 대접하고 싶다”면서. 시청을 지난 신문사 골목으로 접어들자 음식점이 즐비했다. 으슥한 골목 끝에 삼계탕 전문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무더운 여름에도 이미 문전성시였다. 20대 중반 먹었던 삼계탕 맛은 일품이었다. 지금도 한국에 가서 그곳을 지나칠 때면 생각이 날 정도이니까.
과거에는 야채 밖에는 섭취할 수 없었기에 복날이라도 영양 보충을 하려는 서글픈 시절이 있었다. 여름철 허한 기운을 보충하고 힘을 내서 일하기 위해 삼복더위에 보양식을 챙겨 먹었던 것이다. 이제 보양식은 별 의미가 없다. 워낙 고단백 음식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복날이 오면 보양식을 먹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안고 산다.
해리스버그에 있는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하고 친교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코끝에 다가왔다. 결코 작은 인원이 아님에도 토요일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닭을 삶아 약식 삼계탕을 준비한 것이다. 한인교회의 저력이다. ‘아하, 지난 수요일(15일)이 초복이었지’ 삼복을 삼경일(三庚日)이라고도 한다.
초복은 하지(夏至, 낮이 가장 긴 날)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 중복은 하지로부터 네 번째 경일,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 된다. 왜 하필이면 경(庚)일 일까? 경(庚)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천 간 중에서 일곱 번째 천간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뜯어고치다, 새로운 때를 연다”는 의미가 있다.
오행 중 쇠 금(金)을 나타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한다. 풀어 설명하면 복날은 활활 타오르는 여름의 불기운과 서늘한 가을의 금 기운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날이라는 뜻이다. 복은 한문으로 ‘엎드릴 복(伏)’을 쓴다. 가을철 금(金)의 기운이 여름철 더위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세 번 엎드려 굴복했다 하여 삼복(三伏)이라 한 것이다.
초복과 중복은 10일 간격이다. 해에 따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금년 중복은 7월 25일, 말복은 8월 14일이다. 어린 시절에 복날이면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달랬다. 어른들은 산속 계곡에 들어가 발을 담그며 견뎠고, 우리들은 눈만 뜨면 동리 앞 시내에서 물놀이를 하며 새카맣게 그을린 피부로 여름을 지냈다.
복날은 더위를 피하는 즐거운 나들이 날이기도 했다.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복날은 벼를 무럭무럭 자라게 한다. 벼는 복날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초복은 벼가 한 살이 되는 날이라고 했다. 무덥고 습해 기력이 떨어지는 삼복 기간에는 기운을 보충하기 위한 음식, 특히 영양소가 많고 열량도 높은 고기 요리와 수분을 보충해 주는 국물 요리를 주로 만들어 먹었다.
이러한 풍습은 세월이 가도 변함이 없는 듯 싶다. 복날이 다가오면 삼계탕, 육개장, 장어 구이등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음식을 찾는다. 박주일 시인의 <복더위>이다. “어지간하다. 한 점 바람도 없는 적막 속을 코 하나 달랑 밀어내 놓고 복날을 넘기는데 매미 울음이 하늘 끝을 돌아나가면서 더위를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았다가 하긴 하는데 복더위는 복더위다”
금년 여름은 혹독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렇다고 영원한 것은 없다. 더위가 길지는 못하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아야 한다. 어느해든 8월 중순이면 어김없이 찬바람이 나며 더위를 삼켜버린다. 삼복더위를 견디기에는 힘겹지만 산천초목과 곡식에게는 행복한 성수기임을 알아야 한다. 입맛을 잃고 지치기 쉬운 여름이지만 핑계김에 가족들과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며 슬기롭게 삼복 더위를 지나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