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기다린다. 학창 시절에 가장 많이 기다린 것은 시내버스였다. 그 시대 등굣길에 버스는 콩나물 시루였다. 버스가 도착하면 물밀듯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많은 사람을 버스에 우겨 넣고 냅다 “오라이”을 외쳐대던 안내양들의 포스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존경의 마음이 밀려온다.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린다.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내 차례를 기다린다.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기다림이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조급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다. 다 기다려야 한다.
나의 고교 시절에는 펜팔이 유행했다. 당시 학생 매거진에는 펜팔 코너가 자리했다. 무작위로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신기하게 답장이 온다. 전화가 없던 시절. 기다림 속에 받아 드는 편지는 행복의 샘물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에게 묻는다. “편지 온 것 없어요?” “옛다” 방에 들어와 편지를 가슴에 품어보고 조심스럽게 뜯는다. 알알이 써 내려간 글귀는 어린 가슴에 꿈을 심었다.
젊을 때는 기다림이 답답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당장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결과가 빨리 따라오기를 기다렸다. 열심히만 하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믿었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 왠지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기다림이란 어쩌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도 내가 정할 수 없고, 시간의 흐름도 붙잡아 둘 수 없다. 꽃이 피는 시기, 계절이 바뀌는 순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과 체념은 근본이 다르다. 체념은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지만, 기다림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 씨앗을 땅에 심은 농부는 묵묵히 매일 밭을 바라보며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땅을 솟구치고 나오는 새 생명의 자태에 환희를 느낀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결실하는 곡식을 경이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농부는 대부분 정직하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들은 기다리는 동안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결과만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빨리 얻은 것보다 오래 기다리면서 얻은 것이 더 깊은 가치를 지닌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기다림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멈추었던 시간이 얼마나 나를 돌아보고 채워주었는지를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여전히 기다림은 어렵다.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는 불안하고, 원하는 일이 늦어지면 마음이 흔들린다. 특히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때로는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품었던 꿈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
언젠가 말한 것처럼 요즈음은 황혼이 좋다. 뜨겁게 타올라 작렬하던 태양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뉘엿뉘엿 서산에 걸쳐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아침에는 하루가 길게 느껴지지만 어느 새 저녁이 찾아온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기다렸을까? 어쩌면 ‘언젠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속도의 문제이다. 더디가도, 빨리 가도 결국 인생은 거기서 거기 인 것을 인생의 출구에서 터득하게 된다. 따라서 먼저 간다고 자만 할 수 없고, 조금 뒤쳐졌다고 자책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꽃은 자기 계절이 되어야 핀다. 새벽은 어둠이 충분히 깊어진 뒤에 찾아온다. 기다림의 마력이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