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걸맞는 삶을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러니 한 것은 육신적인 나이는 먹어가지만 마음은 그리 쉽게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연배인 분과 만나 대화 중에 물었다. “금년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요?” “저요? 저는 금년 29살입니다” 그 대답의 진의(眞意)를 금방 깨닫고 마주 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장난치며 떼 지어 걷는 아이들을 만난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천진난만한 때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을 서울로 왔다. 구로동 「산업박람회장」이었다. 떠나기 전 담임 선생님은 외쳤다. “너희들 서로 손을 잡고 절대 놓지 마라. 사람들이 많아서 손을 놓으면 영영 고아가 된다” 그 말에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수학여행 내내 친구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고통스러운 여행을 해야만 했다.
둘이 다정하게 걷는 학생들을 만난다. 나도 한 때는 저런 학창시절이 있었는데.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어머니는 시장에 가자고 하더니 교복과 모자를 사주셨다. 내 체격보다는 훨씬 큰 펑퍼짐한 사이즈였다. 키가 작아 모자는 몇 걸음 내디디면 눈까지 흘러 내리기 일수였고, 상의는 무릎 가까이 까지 내리 덮었다. 신통하게도 중학교 3학년이 되며 교복은 그럴듯하게 체격과 조화를 이루었고, 졸업식을 할 때는 교복도 모자도 색깔이 약간 바래면서 몸에 꽉 낄 정도로 작아져서 미련 없이 그 옷과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가랑비를 맞으며 홀로 걷는 고등학생을 만난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여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나서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잽싸게 뛰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다리가 불편한 나는 걸어야 했다. 세찬 빗줄기에 금방 흠뻑 젖고 말았다. 정류장까지 갔으나 버스를 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영락없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기에.
“걷자”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당시 학교는 마장동에 있었다. 신답 극장 앞을 지나 전농동으로 청량리 뇌병원 앞을 지나 제기동 집까지 평상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5시간이나 걸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 해 보라! 사람들의 반응은 참으로 다양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비에 옷이 젖을까봐 걱정하는 단계일 때가 문제지. 아예 젖어버리니까 오히려 편안했다.
팔짱을 끼고 정겹게 걷는 젊은 남녀를 만난다. 나도 한 때는 저런 청년 시절이 있었는데….장발을 손질하느라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소비해야 했고, 통기타만 잡으면 부러운 것이 없었던 시절. 시국 토론을 하며 날을 새우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사랑 병에 가슴앓이를 하며 밤을 지새운 날이 얼마이던가? 애기를 걸음마 시키며 걷는 부부를 만난다. 나도 한때는 저런 풋풋한 시절이 있었는데...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신혼 시절. 미사리 강가를 두 대의 자전거로 내달리며 우린 꿈같이 아름다운 신혼 일기를 써 내려 갔다.
자동차를 새로 장만 했다고 자랑하는 한 분을 만난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생애 첫 자가용을 사서 행복해 하던 때가 있었는데... 품에만 지니고 다니던 운전면허증. 드디어 구입 한 일백만원짜리 프레스토 승용차. 아끼고 자랑하며 안 가는데 없이 누비고 다녔다. 차분하게 걸어가는 노신사를 만난다. 나의 뒷모습도 저렇겠지? 거울을 보면 안 늙은 것 같은데. 사진을 찍어보면 영 마음에 안드는 것은 이제 나도 나이가 들만치 들었기 때문이리라! 패스트푸드 점에서 보채는 손자를 달래며 햄버거를 먹이는 노인을 만난다. 손자, 손녀가 조금 더 자라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지?
리무진 영구차 행렬이 지나간다. 비상등을 켜고 좇아가는 차량들이 볼만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 영구차를 타고 돌아가는 날이 있겠지. 사람들은 자신은 특별할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오늘도 바쁘게 살고 있다. 이렇게 거리에는 지나온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모습들이 시간을 따라 흐르고 있다. 거리를 걷는 것이 나는 그래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