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히 사역을 감당하다가 집안에 들어오면 아직도 반바지를 입고 노니는 내 모습이 신기하다. 건강해 진 것일까? 실제로 날이 따스해서일까? 10월의 마지막 밤! 할로윈데이를 누비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정겹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에는 아이들이 안 온다. 그런 희한한 축제에 마음을 줄 여유도 없거니와 특별히 캔디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거실에 불도 켜놓지 않고 초인종이 울려도 반응을 안 보이니 이미 소문이 난 것 같다.
항상 기대하던 가을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숲을 달리면 단풍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절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차창에 내려앉는 낙엽을 보며 외친다. “그래, 이게 필라델피아지” 행복 해 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귀하게 보인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감정이 무뎌진다는데 아직도 소년 감성인 것이 다행스러우서이다.
11월에 들어서며 밤이 길어졌다. 그래서인지 마당 한켠이 조용해진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은 더 얇아지고 있다. 식탁에 낯선 작은 화분이 놓여있다. 아내에게 한마디 건넨다. “꽃이 왜 그리 꽃을 좋아해?” 아내가 돌아보더니 피식 웃는다. 나도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길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하기야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아내는 부지런하다. 뒷마당에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온 지 어느 새 23년! 그 와중에도 앞마당에 꽃길을 만들었다. 꽃의 종류는 다양하다. 초가을에 하얀 꽃이 만발하여 무슨 꽃인가? 검색해 보니 “설악초”였다. 봄에 시작하여 줄줄이 피어나는 다채로운 꽃의 행렬을 보며 행복하게 출퇴근을 한다. 그렇게 피었다지고 다시 피는 꽃이 인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간 탤런트 최불암이 세상을 떠났다. <수사반장>으로부터 무려 22년간 시청자들을 TV 앞에 붙잡아 놓았던 <전원일기>까지 그는 한국 아버지상의 표본이 되었다. 내색하지 않지만 깊은 부성애를 자연스럽게 연기했던 그다. “파~~~”로 시작하는 그의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백만불짜리 소리였다. 파안대소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서는 최불암표 웃음은 온 국민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신학대학원 톡방에 동기 목사들 은퇴 소식이 연일 쏟아진다. 나의 절친 송태근 목사(삼일교회), 이규현 목사(부산 수영로교회)도 이달에 은퇴를 한다. 한국을 방문하면 그 어머어마한 강단에서 담임 목사와 친한척(?)하며 뜨겁게 말씀을 선포했다. 83년 선지 동산에서 만나 20대를 함께 했던 친구가 수만명 성도를 목회하는 모습은 큰 기쁨이었고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에서 하나둘 물러나고 있다. 가을 낙엽처럼 말이다.
가을의 심장은 노란 빛을 띤 것 같고 치마는 진홍인 것 같다. 봄은 초록이 올라오는 계절이다. 여름은 녹음이 짙어 간다. 가을이 되면 초록이 지쳐 나무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쓸쓸하지만 화려한 가을빛에 사람들은 잠시 삶의 시름을 잊는다. 선물이기 때문이다. 사라짐과 존재가 동시에 놓이는 자리가 가을이다. 나는 분명히 가을을 탄다. 표현하기 어려운 만감이 교차하는 가을빛 아래에서 자주 상념에 잠긴다.
가을은 소리는 줄고 색만 남는 계절이다. 남은 색은 더 순수해진다. 늦게 피어났으니 더 오래 버티려는 것도 아니다.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빛나기로 결심한 존재이다. 붉음은 눈부심이다. 사라짐을 알기에 각 순간이 더 소중해진다.
가을은 유난히 끝의 감정을 연습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끝은 결코 슬프지 않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니까. 나무는 잎을 내려놓고, 공기는 무게를 줄이며, 사람은 마음을 덜어낸다. 가을속에서 묘한 평화를 배운다. 삶이란, 끊임없이 무거워지는 일보다 가끔은 가볍게 흩어질 수 있는 용기를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라짐은 분명 아쉬움이다. 가을은 다르다. 이 계절은 더 따뜻했고, 기억은 더 풍성해졌다. 사라짐을 앞둔 순간에도 선명하게 빛나는 것. 가을이 남긴 가장 뜨거운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