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0.09.25 10:53

반 고흐의 자화상

조회 수 1804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고흐 자화상.png

 

 

  누구나 숨가쁘게 삶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화가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자화상을 그린다. 뒤러, 렘브란트, 고흐까지. 개그맨 주병진이 속옷 사업이 대박이 나서 동그라미가 엄청쳐진 수표를 받아드는 순간. 견디기 힘든 허무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조용필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이렇게 읖조린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가을 문턱에서 고흐가 생각났다. 나는 미술에 대해서는 조애가 깊지 못하다. 하지만 감상할 줄은 안다. 영혼의 화가, 빛의 화가, 해바라기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서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만큼 무명이었다. 궁핍과 정신질환으로 고통스런 생을 살다 사후 재평가된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 예술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고흐는 유난히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무려 40점이 넘을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자기애(narcissism)가 강한 사람이든가, 아니면 도착증세를 가진 경우라고나 할까? 자화상,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붓꽃등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대표작들은 대부분 죽기 직전에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 1년 동안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려낸다. 그때 그린 그림에는 소위 광기가 어려있다.

 

  오늘 주목해 볼 그림은 <귀가 잘린 자화상>이다. 흔히 보는 그림이지만 직접 그가 귀를 잘라낸 후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렸다. 그러니까 왼쪽 귀를 잘라낸 것이다. 왜 그는 스스로 상해를 입히고 그림을 그렸을까? 라이벌이자 친구인 고갱과의 논쟁 끝에 그는 스스로 귀를 잘랐다고 한다. 속설은 그에게 찾아온 청각장애에 대한 서글픈 감정에서였다고 한다. 붕대 감은 귀, 초점 잃은 눈, 축 처진 어깨. 그림 속 그의 모습에서 깊은 슬픔이 번져 나온다. 8년 전, 파리 루부르 박물관을 찾아 이 자화상 앞에 한참이나 서성이며 감상을 했다. 여러 인종의 사람들도 각도를 달리하며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자화상과 반 고흐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는 30대 초반부터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모습을 여러 버전으로 다양하게 그렸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아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많은 예술가였다. 자신을 어떻게 그려 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그림을 통해 답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 가끔 발작을 일으키긴 했어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완전히 평온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했다. 고흐는 말 그대로 그림에 중독된화가였다. 그는 10년에 채 못 미치는 화가 생활 동안 2천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이 자화상에서 고흐는 몸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금 그림을 그리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가을은 내려놓는 계절이다. 푸르고 무성하던 이파리가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여 정든 나무에게 작별을 고하며 떨어져 나간다.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은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전, 그것도 좋지만 반추(反芻)라는 단어가 가슴에 더 다가온다. 지나간 세월을 찬찬히 돌아보며 음미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 그 에너지로 오늘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슬픈 일, 괴로운 일, 아프고 지우고 싶은 일들도 많았다. 그때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지나고보니 다 내 스승이었고 선물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 자화상을 잘 그린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그 어느 것과도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언제까지 자책만 하고 살 것인가? 언제까지 신세타령만 할 것인가? 자화상을 위해 스스로 귀를 자는 명화가의 열정이 부럽지 않은가? 오늘은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젊은 날이요, 가능성의 날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하며 주어진 행복을 재확인하는 진정한 인생의 화가가 다 되길 기도한다.

 


  1. 그 애와 나랑은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는 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Views17410
    Read More
  2. 창문과 거울

    집의 경관을 창문이 좌우한다. 창문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시야로 흡수되고 느낌을 풍성히 움직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유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창을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 ...
    Views17951
    Read More
  3. 나무야, 나무야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아버지는 경기도 양평 지제(지평)지서에 근무중이셨다. 이제 겨우 입학을 하고 학교생활에 흥미를 가지게 될 5월초였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 친구랑 자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그 시간이면 한창 근무할 때인...
    Views18038
    Read More
  4. 컵라면 하나 때문에 파혼

    팬데믹으로 인해 결혼식을 당초 예정일보다 5개월 늦게 치르게 된 예비 신부와 신랑. 결혼식 한 달을 앞두고 두 사람은 신혼집에 거주하면서 가구와 짐을 정리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에 신혼집을 찾은 예비 신부가 집 정리를 끝낸 시간은 자...
    Views18039
    Read More
  5. 우리 애가 장애래, 정말 낳을 거야?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모든 부부의 바램이다. 임신소식을 접하며 당사자 부부는 물론이요,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다 축하하며 즐거워한다. 그런데 태아에게 장애가 발견되었을때에 부부는 당황하게 된다. ‘낳아야 하나? 아니면 다른 선택을 ...
    Views17906
    Read More
  6. 반 고흐의 자화상

    누구나 숨가쁘게 삶을 달려가다가 어느 한순간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화가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자화상을 그린다. 뒤...
    Views18045
    Read More
  7. 버거운 이민의 삶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미국, 스펙터클 한 허리우드 영화,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로 그리던 L.A. ‘평생 한번 가볼 수나 있을까?’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뒹굴던 친구가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버린 날, 강주와 나는 자취방에서 ...
    Views18121
    Read More
  8. 기찻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자란 동네에서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하는 것이 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면 푸른 바다와 그 위를 유유히 가르며 다니는 크고 작은 배들. 비행장 근처에 살았다면 헬리콥터로부터 갖가지 모양과 크기에 비행기를 보며 살게 된다. 나...
    Views24574
    Read More
  9. “안돼” 코로나가 만든 돌봄 감옥

    코로나 19-바이러스가 덮치면서 우리 밀알선교단은 물론이요, 장애학교, 특수기관까지 문을 열지 못함으로 장애아동을 둔 가정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관과 보호센터가 문을 닫은 몇 달간 발달장애인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
    Views18856
    Read More
  10. 인생은 집 짓는 것

    어쩌다 한국에 가면 좋기는 한데 불안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든 일가친척들이 살고 있는 곳, 그리운 친구와 지인들이 즐비한 곳, 내가 태어나고 자라나며 곳곳에 추억이 서려있는 고국이지만 일정을 감당하고 있을 뿐 편안하지는 않다. 왜일까? 내 ...
    Views19732
    Read More
  11. 그러려니하고 사시게

    대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절친 목사에게 짧은 톡이 들어왔다. “그려려니하고 사시게”라는 글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형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부친 목사님의 연세가 금년 98세이다. “혹 무슨 화들짝 놀랄만한 일이 생기더라도...
    Views18716
    Read More
  12. 부부는 『사는 나라』가 다르다

    사람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 신고만 하면 부부인 줄 안다. 그것은 부부가 되기 위한 법적인 절차일 뿐이다. 오히려 결혼식 이후가 더 중요하다. 결혼식은 엄청나게 화려했는데 몇 년 살지 못해 이혼하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그럴까? 남편과 아내는...
    Views19230
    Read More
  13.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는 안 되고 싶다

    장애를 가지고 생(生)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살아도 힘든데 장애를 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당사자가 아니면 짐작하지 못한다. 나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목사님은 장애도 아니지요? ...
    Views18650
    Read More
  14. 지금 뭘 먹고 싶으세요?

    갑자기 어떤 음식이 땡길 때가 있다. 치킨, 자장면, 장터국수, 얼큰한 육개장, 국밥등. 어린 시절 방학만 하면 포천 고향 큰댁으로 향했다. 나이 차이가 나는 사촌큰형은 군 복무 중 의무병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 응급환자가 생기면 큰댁으로 달...
    Views19072
    Read More
  15. 인내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건강도 기회가 있다. 젊을 때야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만 과식을 해도 속이 부대낀다.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땡기질 않는다. 지난 주간 보고 싶었던 지인과 한식당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5개월 만에 외식이었다. 얼굴이 ...
    Views19692
    Read More
  16. 오솔길

    사람은 누구나 길을 간다. 넓은 길, 좁은 길. 곧게 뻗은 길, 구부러진 길.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길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애씀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길의 종류는 많기도 많다. 기차가 다니는 ...
    Views20462
    Read More
  17. 백발이 되어 써보는 나의 이야기

    한동안 누구의 입에나 오르내리던 대중가요가 있다. 가수 오승근이 부른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점점 희어지...
    Views18976
    Read More
  18. 말아톤

    장애아동의 삶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영화제목(2005년)이다. 제목이 “말아톤”인 이유는 초원(조승우)이 일기장에 잘못 쓴 글자 때문이다. 영화 말아톤은 실제 주인공인 자폐장애 배형진이 19세 춘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서브쓰리...
    Views19473
    Read More
  19. 이제 문이 열리려나?

    어느 건물이나 문이 있다. 문의 용도는 출입이다. 들어가고 나가는 소통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사이 다녀보면 문이 다 닫혀있다. 상점도, 음식점도, 극장도, 심지어 열려있어야 할 교회 문도 닫힌 지 오래이다. COVID-19 때문이다. 7년 전, 집회 인도 차 ...
    Views19973
    Read More
  20. 배캠 30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안타깝게도 음악을 접할 기회가 쉽지 않았다. TV를 틀면 다양한 음악 채널이 잡히고 유튜브를 통해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듣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길가 전파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Views193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