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형

by 관리자 posted Dec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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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jpg

 

 

  지난 추석 KBS<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야심 찬 기획을 세운다. 무려 11년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였다. 이혼과 조폭 연루설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기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겠다고 외치며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가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출연을 약속한 것이다. 몇년전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가 왔다는 소문에 가슴이 아팠던 것은 나훈아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70 중반의 나이에도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며 그는 대단한 열창을 이어간다. 3시간 가까지 진행된 쇼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가 발표한 곡 중에 압권은 테스형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소크라테스를 감히 형이라고 부르며 삶의 넋두리를 곡으로 엮은 것이다.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은 세월 동안 그는 많은 곳을 여행했다고 한다. 아프고 힘든 시간이면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글을 썼고 그것을 새롭게 작곡해서 부른 노래가 테스형인데 어쩌면 아버지를 빗대어 자신이 하고픈 말들을 토해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나훈아가 처음 데뷔하여 부른 사랑은 눈물의 씨앗은 어린시절 악동끼리 철엽을 가면 밥그릇을 두드리며 불렀던 추억의 가요이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우리 세대는 그 가사에 세뇌되어 있다. 그래서 누가 사랑이 뭐야?”라고 물어오면 자연스럽게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답하며 놀란다.

 

  누구보다 친숙한 나훈아가 갑자기 테스형을 외쳐댄다. 가사 중에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이 이어진다. 파워풀하고 풍부한 가창력으로 외치는 테스형은 트로트가락에 얹혀 가슴을 파고든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의 사람이다. 그가 2020년 나훈아의 노래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가 외친 너 자신을 알라!”는 아직도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명언이다. 아테네의 대표적인 철학자였던 그는 70세에 독배를 마시고 장렬하게 숨을 거둔다. 그는 사형선고를 내린 아테네의 5백명의 배심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떠날 때는 왔다. 우리는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간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 오직 신()만이 안다.”

 

  소크라테스는 40세부터 70세에 이르기까지 약 30년 동안 아테네 시민의 정신혁명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다. 부패 타락한 아테네 사람들의 양심과 생활을 바로잡고, 교만과 허영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인격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시민들과 대화하며 가르친다. 한편 질책하고 호소하며 계도하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은 그를 법정에 고소했다. ‘인간은 군중심리에 사로잡히면 IQ 80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민중은 올바른 지각을 가진 슬기로운 현중(賢衆)과 우중으로 분류된다. 대학 시절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데모행렬에 휩쓸려 소리를 치며 시내로 돌진하던 내 모습에서 군중의 허상을 증명할 수 있다.

 

  나훈아는 자신이 공연하고 있는 공영방송을 향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라고 꾸짖는다. 그는 종교도 없다. 그렇다고 학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 천재적인 음악성을 지닌 것은 틀림이 없다. 그의 노래 홍시, 엄니를 들으면 울 엄마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다. 종교지도자도, 정치가, 교수, 계몽가, 사회봉사활동가도 아닌 나훈아가 이 혼돈의 시대에 직언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과 충격을 받는다. 대중을 휘어잡는 노랫말과 화술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대중들은 나훈아를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훈아는 신곡 하나를 만들고 악기를 입히고 다듬는데 꼬박 1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정말 그의 신곡은 9곡이다.

 

  테스형을 들으며 소크라테스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는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목사이기 때문일까? 그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플라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