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1.01.15 11:34

군불

조회 수 121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아궁이.jpg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경기도 포천군 화현이 나의 친척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이다. 나지막한 선산이 버티고 있고 산자락을 벗삼아 그림처럼 이집안과 유집안이 사이좋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방학만 하면 시골로 향한 이유는 큰아버지, 어머니(백부모)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분들의 사랑이 위축될 수 밖에 없는 내 성격을 밝게 가꾸어 주었고 그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행복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큰아버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흔하지 않은 콧수염을 기르신 커다란 키에 멋쟁이셨다. 콧수염이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 마치 독립군 대장을 보는듯했다. 약간은 허스키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래서인지 온 동네에서 큰 어른으로 대접을 받음과 동시에 사람들과 친척들은 큰아버지를 무서워했다. 하지만 난 큰아버지가 너무도 좋았다. 젊어서부터 한량 기질이 있어서 많은 곳을 떠돌아다니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큰아버지는 할 이야기가 많으셨다. 워낙 질문이 많은 내게 한 번도 싫은 기색 없이 간간히 기침 섞인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상하게 대답 해 주셨다. 다 받아주시는 큰아버지의 사랑이 장애를 가진 조카를 당당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큰 엄마는 생긴 모양이 호랑이 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자상하셨다. 아이들이 모여 놀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난리법석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큰엄마가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등장한다. 마치 마징가 Z처럼! 큰엄마는 한번도 나에게 손을 대신 적이 없었다. 무조건 다른 아이들부터 때렸다. 누군가 재철이가 먼저 그랬다고 소리쳐도 큰엄마는 우리 재철이가 그럴 리 없다며 다른 아이들만 야단을 치고 매를 때렸다. 그 큰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든든하고 멋이 있었는지 모른다.

 

 큰아버지는 대목(大木: 뛰어난 재주를 가진 목수)이셨다. 큰댁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 집들은 큰아버지가 다 지으셨다고 한다. 그만큼 손재주가 뛰어난 분이셨다. 큰댁에 가면 큰아버지와 난 사랑방에서 함께 잤다. 초저녁에 불을 때면 방은 펄펄 끓는다. 동네 어른들의 마실이 끝나 돌아가고 나면 아랫목에 이불이 펴지고 큰아버지와 난 가지런히 누웠다. 한밤중, 큰아버지의 기침이 시작된다. 지금 생각 해 보면 노인성 천식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뛰어노느라 피곤했던 나는 기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곯아 떨어졌다. 새벽 먼동이 트기 직전,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보면 큰아버지는 이미 자리에 안 계셨다.

 

 군불을 지피기 위해서였다. 소에게 먹일 여물도 쑤고, 10여 시간이 지나면서 식어버린 온돌을 따뜻이 데피기 위해 큰아버지는 새벽이면 일어나 군불을 지피셨다. 잠결에 일어나 뒷간에 다녀오며 아궁이 앞에 앉아계신 큰아버지의 얼굴에 어른거리던 불볕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침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더 자렴그 다정한 목소리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노인이 되면 초저녁 잠이 많아지고 새벽 잠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큰아버지는 새벽이면 일어나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큰아버지는 새벽마다 군불을 지피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싸늘하게 식어가는 온돌 때문에 행여 조카가 잠을 설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불을 지피고 타오르는 불빛을 보며 그분은 인생의 깊은 곳을 음미하셨으리라.

 

 불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씩 번져가다가 활활타올라 거세게 불길을 내뿜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이면 불을 피운다. 교회 하기수련회 마지막 밤에 가지는 순서가 Camp Fire이다. 불을 보며 사람들은 생을 돌아보고, 불을 보며 삶의 결단을 한다. 생을 돌아보고 하루를 계획하며 군불을 지피시던 큰아버지는 실로 대인(大人)이었다. 단잠에서 깨어난 내 가슴에 이미 고인이 되신 큰아버지와 군불의 잔영이 진하게 번져 나아갔다.

 


  1. 장애의 벽 넘어 빛나는 졸업장

    한국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하지만 금년은 COVID-19 여파로 빛이 바랬다. 4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는 모습은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의 눈에도 귀해 보이거니와 스스로도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험난한 시국을 만나 영상으로...
    Views55
    Read More
  2. 저만치 다가오는 그해 겨울

    눈이 온다. 근래 큰 눈이 오지 않아 푸근한 겨울을 꿈꾸었건만 2월에 접어들며 벼르기라도 한 듯 폭설이 일주일 간격으로 퍼붓고 있다. 나는 처음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왔다. 낯선 미국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 희미하게 잊혀졌던 사람을 먼 미국 땅에...
    Views354
    Read More
  3. 금수저의 수난

    지난 2월 5일.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 당사자로 나서게 되었다. 김희국 의원이 물었다. “지금 버스 · 택시 요금이 얼마입니까?” 장관이 즉각 답변을 못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나중에는 “카...
    Views547
    Read More
  4. 아내 말만 들으면

    우리 세대는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아버지의 존재는 실로 무소불위였다. 가정 경제의 키를 거머쥐고 모든 결정을 아버지가 내렸다. 엄마는 뒤에서 뭔가 궁시렁거릴 뿐 그 권세 앞에 아무 힘도 쓰질 못했다. 그 기세가 아들인 우리들에게도 이어질 줄...
    Views627
    Read More
  5. 다리없는 모델 지망생 “구이위나”

    사람이 위대한 것은 어떤 장벽도 넘어설 수 있음을 꿈꾸며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가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
    Views864
    Read More
  6. 삶은 소중한 선물

    신년벽두 아가 ‘정인’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천진난만한 미소로 재롱을 부리는 아가의 모습, 겨우 18개월밖에 살지 못하고 떠나간 생명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는가를 실감했고 그렇게 태어나 떠나가는 아이들이 더 있...
    Views1130
    Read More
  7. 나만 몰랐다

    “김치만 먹는 개”라는 영상을 보았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이제는 사료를 먹지만 개는 사실 육식동물이다. 그런데 이 개는 김치만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매운 김치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 이유가...
    Views1139
    Read More
  8. 군불

    새벽녘에 잠이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단잠이 달아나 버렸다. 추적거리며 내리는 겨울비가 금방 잠이 깬 내 의식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불현듯 고향 사랑방 아궁이가 화면처럼 다가왔다. 어린 시절, 나는 방학만 하면 고향으로 향했다. ...
    Views1219
    Read More
  9. 시간을 “먹는다”와 “늙는다”

    새해가 밝은지 8일 째다. 비상시국이기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새해맞이를 하였다. 이럴때는 내가 목사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낀다. 성찬식도 거행했다. “지난 한해동안 성찬을 전혀 대하지 못했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
    Views1259
    Read More
  10. 2021년 첫칼럼 / 마라에서 엘림으로!

    새해가 밝았다. 듣도 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며 지난해는 암흑으로 물들여졌었다. 사람들은 물론이요, 어느 장소, 물건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희한한 세월을 보냈다.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를 절박한 상황이 새해라는 희망...
    Views1329
    Read More
  11.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남한강 줄기에서 자랐다. 강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을 달리한다. 언덕 위에서 볼 때는 마냥 푸르고 잔잔해 보이지만 모래사장에 내려서면 잔잔히 출렁이는 물결이 건너편을 저만치 밀어낸다. 물가에서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일단 몸...
    Views1390
    Read More
  12. 테스형

    지난 추석 KBS는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야심 찬 기획을 세운다. 무려 11년 동안 소식이 없던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였다. 이혼과 조폭 연루설로 인해 힘들어하던 시기 대중 앞에서 “바지를 내리겠다”고 외치며 ...
    Views1448
    Read More
  13. It is not your fault!

    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바쁘게 돌아치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가는데 나중에는 ‘허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은 유언처럼 남긴 전도서에서 ...
    Views1433
    Read More
  14. 지연이의 효심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도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우연히 마트에서 손에 약봉지를 든 지인과 마주쳤다. “누가 아파요?” “제 아내가 루게릭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
    Views1631
    Read More
  15. 1회용

    바야흐로 1회용품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컵부터 시작하여 세면용품, 밴드, 도시락, 가운, 렌즈, 면도기, 카메라, 기저귀, 주사기, 다양한 모양의 그릇까지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1회용품 홍수시대이다. 1회용품 중에는 한번 쓰고 ...
    Views1632
    Read More
  16. 라떼는 말이야~

    나는 라떼를 좋아한다. 블랙은 매번 도전을 해 보지만 취향이 아니고 아직은 촌스러워서 달달한 커피가 좋다.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갈아서 만드는 라떼는 부드럽고 단맛이 혀 끝에 닿으며 기분을 up 시켜 주어 좋다. 지인들은 첨가물 없이 커피를 즐기며 한마...
    Views1736
    Read More
  17. 미묘한 결혼생활

    가정은 소중하다. 천지창조 시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그 속에는 가정이 첫 교회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참교회의 모습을 계시하셨고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독처하는 것...
    Views1797
    Read More
  18. 그것만이 내 세상

    우리 밀알선교단에는 다수의 장애인들과 장애아동들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아울러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18년 전, 밀알선교단 단장으로 부임하였을때에 전신마비 장애인이 ...
    Views1890
    Read More
  19. 그 애와 나랑은

    갑자기 그 애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진학의 꿈을 향해 달리던 그때, 그 애가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전근을 자주 다니던 아버지(경찰)는 4살 위 누이와 자취를 하게 했다. 그 시대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던...
    Views1862
    Read More
  20. 창문과 거울

    집의 경관을 창문이 좌우한다. 창문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시야로 흡수되고 느낌을 풍성히 움직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통유리가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창을 통해 시원하게 펼쳐진 정원을 바라보는 것이 ...
    Views189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8 Next
/ 28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