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21.04.09 10:19

시장 인생

조회 수 1570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시장.jpg

 

 

  나는 시장 영상을 즐겨본다.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없이 때로는 놀라는 표정으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 분위기를 감상한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좋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직종의 시장 사람들이 날마다 똑같은 패턴으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흥미롭고 신기하다. 규모를 갖춘 번듯한 가게에서 안정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텃밭에서 농사지은 곡물과 채소를 이고 나와 좌판을 벌여놓은 노파들의 모습이 서럽다. 여느 상인들처럼 목숨 걸고 장사를 하는 모양과는 거리가 멀다. 5일 장에서 만나는 이웃이 있어 좋고 어우러져 마시는 막걸리와 돼지고기 숭숭 썰어넣은 김치찌개 안주에 더 마음이 가 있는 듯하다. 그렇게 7~80이 넘은 할머니들의 표정에서 넉넉함을 본다.

 

  인생은 어차피 반복적이지만 시장 사람들이야 말로 다람쥐 쳇바퀴 삶을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장으로 향한다. 식당을 하는 분들은 새벽부터 출근이다. 첫 손님을 맞이하여 마수걸이를 하면 기분이 째진다. 장사스타일도 각각이다. 어떤 분은 소리를 지르며 손님을 부른다. 손님이 다가오면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설명을 한다. 반면 무덤덤한 주인도 있다. 성격과 말수가 다르지만 그렇게 인간 세상은 버무려져 흘러왔다. 한푼이라도 깎아보려고 흥정하는 손님의 모습이 결코 밉지않은 곳, 그 응석을 마다하지 않고 한 줌 더 얹어주는 미덕이 시장의 매력이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는 이웃들의 진지함을 엿보게 한다. 먹자골목의 왁자지껄함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시장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장사가 잘되는 날도 있지만 한가하기 이를데 없는 날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때는 순풍에 돛단 듯 모든 일이 술술 풀리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용을 써도 캄캄절벽일 때가 있다. 봄의 나른함이 곧 여름을 불러들인다. 비지땀을 흘리며 고생을 하다보면 서늘한 가을바람이 겨드랑이에 파고든다. 그러다가 맞이하는 겨울. 그렇게 인생이 엮어져 감에도 도끼자루 썪는줄도 모르고 나이를 먹는다. 강가에 가만히 앉아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아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데 시장판 시계는 얼마나 신속히 갈까? 날이 저물어 가게 문을 내리고 집으로 향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질 여유도 없이 상인들은 세월에 덮혀 살아가고 있다.

 

  시장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단골이다. 날이 춥든지 덥든지, 거리가 얼마나 걸리는지를 막론하고 단골은 오직 그 집만 찾는다.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가게에 들어서던 어리디 어리던 아이가 장가, 시집을 가고 아이들과 그 가게를 찾아온다. 손님뿐이랴! 장사에 몰입하며 돌아치다 보니 검디검던 머리는 희어가고 어리던 아이들은 장성하여 떠나간다. ‘제발 고된 삶을 넘어서서 살라고 온갖 고통을 견뎌내며 공부를 시키고 뒷바라지를 했건만 어느새 그 자리에 돌아와 부모의 기업을 이어받는 자식들도 있다. 애비의 마음은 아리디아리지만 어쩌랴! 도시에서 웬만한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몸은 고되도 속은 편하다니 말이다. 시장통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인생의 단면도를 보는 듯하다.

 

  내가 시장영상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엄마를 따라다니며 맡던 장날의 냄새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가 따라나선 시장의 분위기는 어린 가슴을 달뜨게 해주었다. 가게에서, 혹은 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경기도 어투가 너무도 정겨웠다. 생선가게를 지나며 맡는 비릿한 냄새가 싫지 않았고 포목상을 지날때에 화려한 옷감 진열대가 눈호강을 시켜주었다. 드디어 만나는 먹자 가게에서 맛보는 음식이 어린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 어느날 밀고 들어온 대형할인마트와 인터넷 쇼핑으로 인해 전통시장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편의주의와 원스톱 쇼핑의 편리함이 시장상인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있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을 때, 기분전환을 통해 새로운 다짐을 하고 싶을 때 꼭 가봐야 할 삶의 현장이 바로 시장이다. 한국 시장의 정취가 나를 부른다

 

 


  1. 관중 없는 올림픽

    모두의 염려 속에 개막한 올림픽이 연일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승리하여 메달을 딴 선수는 인생 최고 환희의 순간을 만끽했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일찌감치 짐을 싸야만 했다. 스포츠 매니아라 할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
    Views12794
    Read More
  2. 그들의 우정이 빛나는 이유

    한 여고 점심시간, 두 학생이 식당에 들어선다. 한 학생은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의자 당겨서, 앉아있어.” 한 여학생이 식판 2개를 들고 배식을 받는다. 뇌병변 장애로 두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친구 최주희 양을 위해 6년간 학교에서 최 양의...
    Views12922
    Read More
  3. 미안하고 부끄럽고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가고 싶을 때 가는 사람도 없다. 어느날 나는 지구별에 보내졌고 피부 색깔로 인해, 언어, 문화, 생활양식에 의해 분류되어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람은 언제 행복할까? 소통이 잘 될 때이...
    Views13612
    Read More
  4. 사는게 영화다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
    Views13118
    Read More
  5. 징크스

    사람은 누구나 묘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다. 바로 징크스이다. 징크스란 ‘불길한 일 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뜻한다. 어원은 일반...
    Views13638
    Read More
  6. 이마고(IMAGO)를 아십니까?

    현세에 일어나는 위기는 다양하다. 경제적 공황, 불신, 고립, 이제는 역병까지. 하지만 가장 큰 위기는 가정이다. 가정은 삶의 최전선이다. 가정이 흔들리니 관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사회 전반의 구조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의 기독...
    Views13948
    Read More
  7. 동병상련(同病相憐)

    나에게는 소중한 제자들이 많이 있다. 철없던 20살, 반사를 하며 가르쳤던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22살 교육전도사가 되어 지도하던 학생들. 26살부터 지도했던 중 · 고등부 청소년들. 그리고 30이 넘으며 지도하던 청년대학부까지 많기도 많다. 하지만...
    Views13622
    Read More
  8. 이사도라

    아직 젊다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나이지만 생을 되돌아보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나이가 들수록 실감이 난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이젠 체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왜 살...
    Views14066
    Read More
  9. 미나리 & 이민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게 되면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민은 삶의 축을 흔드는 엄청난 결단이다. 일단 이민을 왔으면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오랜 세월 ...
    Views13901
    Read More
  10. 아름다운 그림

    내 주위에는 효자가 많다. 늙으신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그들의 효성(孝誠)에 가슴이 저며온다. 만난지 38년 된 박 목사는 그 시대에 최고 인테리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고 7남매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성격이 푸근하다...
    Views14019
    Read More
  11. 사과나무는 심어야 한다

    인생은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삶을 산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분들을 보며 그 사실을 실감한다. 정말 시한부 인생이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죽을까봐 안한다면 그것은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비록 내일 지구의 ...
    Views13964
    Read More
  12. 그 만남이 내 수준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남으로 생이 이어진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어쩌면 그런그런 아이들끼리 그렇게 어우러지는 것을 보았다. 대화의 수준도 그랬다. 그래서 부모...
    Views14302
    Read More
  13. 개똥 같은 인생?

    요즈음 아이들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마침 불어닥친 한류열풍으로 한낮 꿈이 아닌 인기와 돈이 동시에 보장된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술을 하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진정성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표출되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
    Views130974
    Read More
  14. 그냥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반가웠다. 그러다가 꿈속에서도 스스로 되뇌였다. ‘엄마는 돌아가셨는데…’ 번뜩 잠이 깬 내 귀에 창문을 두드리는 봄비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나는 평생 그분을 “엄마”라고 불렀다. 한번도 &lsq...
    Views14618
    Read More
  1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크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 ‘I ♡ YOU’! 빨간 초가 인상적인 이 케이크는 내로라하는 파티쉐가 만든 것보다 더 먹음직스럽고 아름답다.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남다른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케이크를 만든 주인공은 ...
    Views14125
    Read More
  16.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인생이 가볍다는 말은 없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의 무게는 버겁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어쩌다 먹는 짜장면, 별것도 아닌 음식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항상 정겨웠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
    Views16400
    Read More
  17. 영혼의 서재를 거닐다

    사람은 누구나 지성, 이성, 감성을 가지고 있다. 이 성향이 얼마나 조화로우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성이 드러난다. 사람들은 눈과 귀, 촉감을 통해 판단하고 결정한다. 너무도 불확실한 것임에도 완벽하다고 생각하며 생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위에 ...
    Views15089
    Read More
  18. 나빌레라

    딸에게서 톡이 왔다. “아빠, 아빠가 좋아할 듯한 드라마 소개할께요. 나빌레라” 일단 “댕큐”라고 답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드라마를 보았다. 금방 빠져들었다. 주인공 노인이 발레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줄거리였다. 연기파 박인환...
    Views15021
    Read More
  19. 시장 인생

    나는 시장 영상을 즐겨본다.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없이 때로는 놀라는 표정으로,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 분위기를 감상한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좋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직종의 시장 사람들이 날마다 똑같은 패턴으...
    Views15702
    Read More
  20. 시각장애인의 아픔

    “버스정류장의 안내 음성이 들리지 않아 버스를 잘못 탄 적이 있습니다. 민원에 따라 소리를 줄이면 시각장애인인 저는 출근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서울시에 거주하는 제모(32세· 시각1급)씨는 2년 전부터 출근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
    Views1533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