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by 관리자 posted Apr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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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에게서 톡이 왔다. “아빠, 아빠가 좋아할 듯한 드라마 소개할께요. 나빌레라일단 댕큐라고 답을 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드라마를 보았다. 금방 빠져들었다. 주인공 노인이 발레에 도전하는 획기적인 줄거리였다. 연기파 박인환이 주인공을 맡았다. 그의 나이 어느새 76세이다. 그런 그가 늦깍이 발레리노에 도전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오랜 친구가 양로원에서 외로이 지내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 덕출진짜 좋아하는 걸 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노인이 발레를 하려 한다는 것이 헛된 노망처럼 보이지만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심장은 뛴다.

 

 50년 차이를 극복한 채록(송강 )과의 '() 사제 호흡''나빌레라'의 관전 포인트다. 노인의 쌩뚱맞은 발레 도전에 스물셋 젊은이는 몸서리를 친다. 하지만 끊임없이 다가서는 진정성 앞에 송강은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서서히 끈끈해져 간다. 상처뿐인 젊은 채록의 마음을 보듬어가는 과정이 정겹고 눈에 이슬을 머금게 한다. 꼰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손자뻘 되는 청년에게 참 제자로 다가서는 그 모습이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의 표상인 듯싶다. 힘들지만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사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실상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나는 베이비부머세대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부대끼며 수업을 했다. 교복와 교련복은 우리 세대의 상징이며, 대학 시절 최루탄 냄새를 벗 삼으며 격변기를 지켜보았다.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한국경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도약을 했지만 주어진 직장에 최선을 다하던 40대에 IMF의 돌풍을 맞아 희생양이 되어 갔다. 2002 월드컵은 그 위력을 과시하며 국민소득이 치솟는 세상이 왔건만 우리 세대는 서서히 중앙의 자리를 내어주는 나이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런 의미에서 드라마 '나빌레라'는 모든 것이 혼미한 세상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삶을 회고하는 글을 읽었다. “나는 늙는 것도 참 행복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소년시절에 요절했고, 어떤 사람은 청년시절에 일찍 갔고 어떤 사람은 제집 문지방에 넘어져 황당한 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나는 하늘이 준 운세를 누리며 무사하게 살아왔으니 이는 천우신조요 필시 행운이 나를 돌봄이니 이에 감사하고 만족하련다. 나에게 오늘이야말로 앞으로의 살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며 가장 소중한 날이라 기쁘게 반기고 싶다. 오늘을 건강하게, 즐겁게, 열심히, 긍정 속에 살고 여유롭게 살다가 예기치 않은 어느 날 홀연히 사별을 맞이한다면 그때 자연으로 돌아가 한 줌의 흙이 되리라.” 글을 읽다가 하늘을 보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그만큼 경험과 연륜이 삶의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젊을 때는 눈에 나타나는 현상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기대치도 높지 않지만 만사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자리하였다. 사람에 대하여 너그러워졌고 자연을 보는 깊이가 더해졌다. 프레이밍 효과가 있다. 긍정적 틀과 부정적 틀에 따라서 의사결정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 같은 말을 가지고 어떤 틀에 담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가 아는 말로 반밖에 안 남았네가 아니라 아직도 반이 남았네사고이다.

 

 지나치며 만나는 어린아이의 미소가 아름다운 건 내 안에 동심이 있기 때문이요. 해맑은 아침햇살이 반가운 건 내 안에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은 건 내 안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늘 감사한 건 내 안에 겸손이 있기 때문이요. 오늘 마주친 사람들이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존경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에 늘 향기가 나는 건 내 안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자꾸만 곁길로만 나가는 청년을 향해 덕출이 해 준 말 네 마음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너도 날아오를 수 있어. 그러니까 끝까지는 가지마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