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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그리고 음파.jpg

 

 

세상에는 노래가 많다. 사실 들리는 모든 소리가 리듬을 타고 있다. 어린 시절에 우리 동네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 그 옆에는 대장간이 마주했다. 친구들과 심심하면 그 앞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모습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커다란 물레방아가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받아 굴러가고 아낙네들이 가끔 곡식을 빻아가느라 분주했다. “쿵더쿵 쿵덕…” 그 건너편에서는 대장장이가 웃통을 벗어던진 채 담금질을 해댔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 덩어리를 끄집어내어 연신 내리치다가 또다시 물에 식힌 후 다시 풀 무불에 집어넣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다보면 낫도 나오고, 호미, 칼도 나왔다. 신기했다.

그 집에서 일하는 아제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덩치는 어마어마하게 큰데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를 가끔 사람들이 놀려댔다.이를테면 ‘장애인 희롱’이었다. 전혀 말을 못하는 그는 욕하는 것은 용케도 알아차리고 달려들었다. 아마 입모양을 보며 알아챈 듯 했다. 그가 화가나 날뛰기 시작하면 모두 도망을 가야했다. 순하디 순하던 아제가 험한 인상을 쓰고 게다가 무서운 연장까지 거머쥐면 무섭기 그지없었다. 그때 나는 장애인이 얼마나 많은 분을 품고 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조금 벗어나 뒷산에 오른다. 바위에 자리를 잡고 누우면 기분 좋은 현기증이 일며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풀벌레 소리, 뜸뿍이 소리, 온갖 새소리, 날아가는 메뚜기의 날개짓, 파란 하늘을 친구 삼아 저만치 떠가는 구름은 내 입에서 절로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토요일 노래하는 “요정”을 만났다. 한국에서 찾아온 “바다”가 그녀였다. 사실 나는 SES를 잘 모른다.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여성 걸그룹의 이름이 SES라는 것뿐. 그녀들의 노래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 40대를 바라보던 나. 거기다 첫 목회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던 나에게 10대 걸그룹의 노래는 정서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SES “바다”를 미국 땅에서 만난 것이다.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자매가 공연장 로비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알아보지를 못했다. 아내가 당황하며 내 옆에 붙는다. “목사님, 바다 씨 예요.” 아마 주차장에서 아내와 먼저 대면을 했던 것 같다. “응? 아, 아∼ 예.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바다 일행을 출연자 대기실로 안내했다.

적당한 키에 해맑은 미소, 순수한 말투가 정이 갔다. 순서가 막을 올리고 드디어 “바다”가 무대 옆 계단을 서서히 내려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임이었다. 사람들에게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금방 환호로 번져갔다. 역시 젊은 그룹들이 분위기 메이커였다. 소리도 표정도 반응도 달랐다. 앞자리에 자리한 소위 점잖은 분들에게 열광적이 반응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처음 인사할 때와는 전혀 다른 상큼한 모습으로 보라색 원피스를 착용한 “바다”는 청중들을 주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언뜻 느껴도 쉽게 풀기 힘든 필라의 경직된 분위기를 그녀는 노래 한곡으로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버렸다. 미국에 당도한지 사흘 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다”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열창에 열창을 거듭했다. 바다도 놀랍지만 필라 한인동포들이 이런 에너지가 있었는가 할 정도로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소리를 지르고 머리위로 두 손을 휘감아 돌리며 바다의 노래를 따라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냥 좋았다.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스타를 무대에 올리고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 하는 동포들의 모습이 고마웠다. 그동안 마음을 졸이며 준비해 온 밀알의 밤은 “바다”와 관중들이 하나 되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녀는 떠나갔지만 내 입에서 자꾸 “옛사랑”이 흘러나오는 것은 저만치 지워진 내 첫사랑에 대한 추억 때문일까? “바다”가 남긴 여운 때문인가? “바다”의 음파가 내 가슴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타를 꺼내 노래 한곡을 불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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