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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9 11:10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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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jpg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실감하게 되는 때는 바로 내 역할을 깨닫는 시점이다. 매사에 조건과 배경을 따지면서 우열을 가리는 세태가 되면 삶이 피곤 해 진다. 우리 세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입시를 치러야 했다. 야속한 것은 우리가 진학을 하고 나면 후배들은 무시험으로 학교에 들어왔다. 2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그런 혜택을 자유롭게 누렸을 텐데 세대의 서러움이었다. 항간에는 권력자의 외아들이 하도 공부를 못해 취해진 궁여지책이라고 했다. 헛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에서 큰 대()를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권력자라도 아들 하나를 편하게 공부시키기 위해 나라의 교육제도를 제 맘대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갑자기 학교에서 우열반을 편성하여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제일 공부를 잘하는 그룹은 용(). 다음은 진(), (), ()반으로 배치시켰다. 이름도 기가 막히게 잘 지어냈다. 아마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률을 증진시켜 학교의 위신을 높여보고자 그런 제도를 도입한 것 같았다. 나는 다행히 용반에 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왠지 모를 우쭐한 마음으로 중3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친구들 간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2년 동안 스스럼없이 우정을 다지던 사이에 벽이 생기고 순수한 우정은 서서히 무너져갔다.

 

  두드러진 것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용반에 오면 오히려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가르치는 것을 느꼈다. 거기다가 용반에는 교감 선생님 아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다른 반에 가면 선생님들은 어느새 폭군이 되어갔다. 얼마나 비열한 모습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용반은 학교의 명예를 빛낼 역군들로 교장 선생님과 육성회장의 특별대우를 받으며 공부를 했다. 그 다음 반으로 갈수록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중간고사를 거치며 용반에 있던 아이들이 진 반으로 떨어지고, 진 반에 있던 아이들이 용반으로 승진(?)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이들 간에 위화감은 심각한 상황으로 번져갔다. 다행히 여름방학이 지나고 학교에서 특단의 조치로 우열반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시 교육자들이 얼마나 유치한 발상을 했는지를 가늠하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이미 어린 나이에 상승의 단맛과 하락의 쓴맛을 체험했다고나 할까?

 

  지금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악습은 공부로 사람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동창들을 들여다보면 공부보다는 진취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사업가로 혹은 예술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모습을 발견한다. 동창회에 나와서나, 학교발전을 위해서 선뜻 거금을 내어놓는 친구들은 우등생 출신보다는 바로 그런 부류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두뇌가 좋아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분야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 중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무시당해야 할 사람도 없다. “사람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역할을 가지고 태어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나이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다. 내가 가진 것은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다. 그것을 활용하며 역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누구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다른 사람의 존재와 재능을 인정해 주며 내가 가진 독특한 분야를 계발하며 당당하게 사는 것이다. 만능은 없다. 있다해도 들어가보면 의외의 허당이 많다.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소화해 내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당당히 현실과 맞서는 사람,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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