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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7 10:45

불편했던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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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jpg

 

 

  사람에게는 누구나 첫시간이 있다. 아니 첫경험이 있다. 그 순간은 두렵고 긴장되고 실수가 동반된다. 처음 교회에 나갔을때에 난처했다. 다들 눈을 감은 채 사도신경을 줄줄 외우고, 성경, 찬송가를 척척 찾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모멸감이 느껴졌다. ‘이거 교회는 아무나 다니는 곳이 못되는구만예배를 마치고 정호가 다가왔다. “재철아, 힘들었지? 처음에는 다 그런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가 어디있니? 자꾸 다니다보면 너도 쟤들처럼 찬송도 부르고 성경도 잘 찾게 될거야!” 고마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교회를 다녔고, 무엇보다 교회 탁구대에서 운동하는 시간은 사실 예배 시간보다 더 기다려지고 나를 흥분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렇다. 인생사는 처음부터 능숙한 것은 하나도 없다. 처음 엄마의 손을 잡고 입학하던 초등학교- 대부분의 아이들은 보자기에 학용품을 싸 넣어 등교를 했지만 나는 가죽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 가방 냄새가 아직도 내 코에 남아있는 듯 하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고 바글대는 교실 안에서 아이들을 사귀고 벌어지는 일상이 마냥 즐거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또 다른 분위기에 적응을 해야 했고 엄격한 담임선생님의 훈화에 주눅이 들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생활-시내버스를 타고 오가는 등 · 하교 길은 고되지만 에피소드가 가득했다. 얼굴이 예쁜 안내양은 금방 소문이 퍼져갔고 안그런 척 하교 길에는 그 버스만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니 그녀들도 우리 또래였다.

 

  그 시절에는 오로지 이성이 우리의 관심사였고, 처음 만나 데이트를 할 때에 추억이 새록새록 스쳐갔다. 약속장소에 나가기 위해 옷을 몇 번이나 갈아 입어보고, 거울에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머리를 가다듬느라 애를 썼다. 또한 조금은 지성적으로 보이기 위해 반드시 책을 한권 끼고 나갔다. 아무래도 나는 오른쪽보다는 왼쪽 얼굴이 더 잘생겨 보이는 것 같아 그 아이를 만나면 항상 그 애 오른편에 앉았다. 음식을 먹을때도 조심하며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로 불편했던 설레임이라고 할까?

 

  29살에 한 자매를 만났다. 곱게 빗어넘긴 단발머리에 훤칠한 키. 무척이나 하얀 피부에 얼굴이 매력적이었다.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첫 대화를 나눌때에 너무도 쑥스럽고 어색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했고 표정 관리도 신경을 써야 했다. 자매는 차분하고 신중하였다. 무슨 말을 하든 진지하게 들어주고 지혜롭게 응대를 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전도사였기 때문이었으리라! 평신도인 자매가 신학생을 대할때에 얼마나 어려웠을까? 혼기가 차가던 나는 과감하게 청혼을 했고 우리는 새록새록 새싹이 올라오던 3월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떠나서 맞이한 제주에서의 첫날 밤, 신혼-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좋으면서도 힘이 들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내는 내게서 성직자의 모습만을 찾으려 했고, 오히려 나는 자유분방한 부부의 삶을 원했다. 부부는 부부다. 세상에서 거리낄 것 없는 사이가 부부아닌가? 교회에서는 몰라도 집에 오면 그냥 평범한 한 남자이고 싶었다. 그것이 집안 대대로 예수를 믿은 신앙인과의 차이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방귀 소리를 들으며 놀라고 트림하는 것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태어나고 집안은 북새통을 이루며 서로에게 익숙해져 갔다. 세월의 흐름 속에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을때에 신선함은 서서히 바래갔다. 어느 순간부터 맨몸으로 거실을 오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에덴동산에 아담과 이브가 되어갔다. 지금은 어떨까? 아예 말을 말아야지. 그것이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동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가슴 한켠에 있다. 다 드러내는 것보다는, 그저 편안한 관계보다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긴장한 듯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했지만 몹시나 설레였던 그 시절이 그래서 그립고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익숙해지는 것은 좋지만 무례하고 일방적이기보다 불편하지만 마냥 설레이는 가슴으로 평생을 사는 방법을 그래서 연구하고 싶다. 불편했던 설레임은 이제 추억으로 저만큼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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