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728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이규환 교수.jpg

 

 

  삶에는 시련이 있다. 하지만 극한 장애가 찾아온다면 견뎌낼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온몸이 마비되는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상황을 역전시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이규환 교수.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하는 현직 의사이다. 원래 체격 좋고 공부도 잘해서 남 부러울 게 없었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만 2002년 다이빙을 하다가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다. “오지게 다쳤네.” 병원에 실려 온 이규환을 본 의사의 첫 마디였다. 결국 그 사고로 신경, 운동 기능과 관련된 5, 6번 경수 손상으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치대 본과 3학년 시절이다.

 

  188cm에 운동을 좋아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전동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깨어나 보니 중환자실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 얼굴 아래는 물론 손가락마저 감각이 없는 것을 깨달으며, 그는 깊은 암흑 속에 들어간다. 이규환은 의사에게 수면제를 달라고 했다. “‘이게 꿈이라고,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자보았는데 현실이더라구요. 원망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하늘에 욕도 하고 나 좀 죽여달라고 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중환자실에서의 악몽을 이규환은 생생히 기억한다. “매일 매일 고통의 공간이었습니다. 사람은 죽어 나가고 비명이 들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책을 읽어야만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당시 병원에서 100권 정도를 읽었다고 한다. 모두 포기하라고 했지만 그는 수술 1년 만에 다시 학교로 복학했다. 하루 대부분을 앉거나 누워서 보내야하는 전신마비 장애인들은 피부 욕창 등이 자주 발생될 수 있다. 그 역시도 욕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의 몸에 욕창이 생긴 줄도 모르고 공부에 열중하였다. 엄청난 고통과 심적 부담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동기, 후배들의 도움과 격려로 견뎌낼 수 있었다. 끝없는 노력 끝에 결국 이규환은 세계 최초의 중증 장애인 치과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되었다고 끝이 아니었다. 예민한 기술이 필요한 치과 진료는 새로운 도전을 필요로 하였다. 그는 자신의 팔에 끼워 쓸 수 있는 특수도구를 개발했다. 전담 위생사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병원을 개업했다. 개업하여 마주친 첫 환자는 휠체어에 앉은 그를 보자마자 병신에게 진료받기 싫다는 막말을 내뱉고 돌아섰다. 그가 보는 앞에서 침을 뱉고 나가는 환자도 있었다. 같은 돈을 내고 치료를 받는 것이니 모든 상황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10명이 방문하면 7명은 진료를 받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의사는 30분이면 끝내는 스케일링도 이 씨는 1시간 넘게 걸렸다. 그러나 그는 환자에게 시간이 두 배 걸리는 대신 제가 세계에서 가장 꼼꼼하게 해 드릴 께요라며 온 정성을 다했다. 그의 진심과 실력은 통했고 하나둘 환자가 늘어갔다. 지금은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검사, 상담, 판독, 예방 클리닉을 담당하는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교수는 장애인도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비장애인보다 10배의 노력을 할 각오만 있으면 말입니다.”고 다부지게 말한다. 이런 대단한 일들을 감당해 낸 그이지만 항상 부모에게는 평생 불효자라고 되뇌인다. 그가 다쳤을때에 부모는 실신하다시피 했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그를 누구보다 응원해 주었다.

 

  이규환 교수는 하늘이 자신에게 이런 길을 가도록 만든 뜻이 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장애를 가지게 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며,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바탕으로 의료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필라밀알선교단에도 4분의 전신마비 장애인이 있었다. 그들을 처음 만났을때에 전이되어오는 아픔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것은 같은 장애인으로서의 동병상련이었다. 극한 장애를 이겨내고 가장 예민한 감각이 필요한 치과의사로 살아가는 이규환 교수를 그래서 더욱 존경하고 귀하게 바라본다.

 

 

 

 

 


  1. 내 나잇값

    나는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다. “세부류와는 절대 싸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신자, 여자, 연하이다. 목사이다보니 신앙이 없는 사람을 이길 확률이 없다. “당신 목사 맞아” 그러면 끝이다. 여자를 이기려고 ...
    Views5175
    Read More
  2. 또 다른 “우영우”

    지난 23일. 대구에서 30대 엄마가 자폐 증세가 있는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2살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뒤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뛰어내려 숨진 것이다. 집 안에서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내용을 담은 유서가 발견되...
    Views5102
    Read More
  3. 시간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만 해도 선교사를 파송하면 현지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였다. 불타는 열정으로 선교지에 도착하였다 하더라도 6개월은 아무일도 못하게 한다. 답답해도 참아야 한다. 그 기간이 차면 서서히 선교활동을 시작한다. ...
    Views5062
    Read More
  4. 바람길

    무덥던 여름 기운이 기세가 꺾이며 차츰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그렇게 한 계절이 바람을 타고 바뀌어 가고 있다. 무척이나 차가웠던 겨울바람, 그리고 가슴을 달뜨게 하던 봄바람의 기억이 저만치 멀어져 갈 무렵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게 만드...
    Views5290
    Read More
  5. 거울 보고 가위 · 바위 · 보

    거울을 보고 가위, 바위, 보를 해보라! 수백 번을 해도 승부가 나질 않는다. 계속 비길 수밖에. 그런데 평생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부류가 있다. 바로 부부이다. 갈등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모든 것이 너무 잘 맞아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부부말이다. ...
    Views5588
    Read More
  6. 영옥 & 영희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일평생 무거운 돌에 짓눌려 있는 듯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옆집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기대임을 실감하면서 말이다. 소중한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진하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
    Views5301
    Read More
  7. 아이스케키

    한 여름 뙤약볕이 따갑다. 목이 말라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다가 문득 어린 시절에 추억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살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냇가로 멱(수영)을 감으러 가서 더위를 식혔다. 배가 고프면 주로 감자나 옥수수를 먹었다...
    Views5537
    Read More
  8. 해방일지 & 우리들의 블루스

    한 교회에서 35년을 목회하고 은퇴하신 목사님이 “이 목사님, 드라마 안에 인생사가 담겨있는 줄 이제야 알겠어요”라고 말해 놀랐다. 일선에서 목회할 때에는 드라마를 볼 겨를도 없었단다. 게다가 그런 것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보는 것 정도로...
    Views5516
    Read More
  9. 다섯손가락

    얼마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군의 쾌거 소식을 접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우승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그 연주자다. 18살 밖에 안된 소년이 세계적인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나...
    Views5227
    Read More
  10. 행복한 부부생활의 묘약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은 없다. 남녀가 만나면 feel이 통하고 그래서 사랑을 하고 무르익으며 결혼을 한다. 결혼은 시작이다. 그런데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하면 다 된 줄 안다. 젊은 부부를 만나면 노파심에 하는 말이 있다. “노력 없이는 부부생활은 어...
    Views5900
    Read More
  11. 은총의 샘가에서 현(絃)을 켜다

    “엄마… 같이 죽자!” 어린 신종호는 면회 온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엄마의 눈동자가 커지더니 눈이 빨개졌다. 장애가 있어 외할머니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생업에 매달려 바쁜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될 수 없...
    Views5661
    Read More
  12.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사람들마다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느끼는 방향과 다른 사람을 통해 받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 나가 대학 동창을 만났다. 개척하여 성장한 중형교회를 건실하게 목회해 왔는데 무리를 했는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작년 말....
    Views5140
    Read More
  13. 오디

    날마다 출근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조금 더 기다리다보니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무언가 잔뜩 담긴 용기를 내어민다. “이거 드셔!” “뭔데?” 들여다보니 ‘오디’였다. &...
    Views5502
    Read More
  14. 파레토 법칙

    <파레토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이 용어는 개미를 소재로 한 과학실험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개미를 관찰하여 연구하는 중에 개미의 20%만이...
    Views6220
    Read More
  15. 障礙가 長愛가 되려면

    장애를 가지고 평생을 사는 것은 고통이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수준에서 인생을 생각한다. 건강한 것은 물론 축복이다. 하지만 장애에 대해 절실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장애는 선천성과 후천성이 있다. 사람들은 선천성 장애가 많은것으로 생각한다. 아니...
    Views6907
    Read More
  16. 보내고 돌아오고

    3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전국을 다니며 집회를 인도하면서 고국의 향취를 진하게 느끼고 있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인파를 보며 한국은 팬데믹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듯하다. 20년 전, 정들었던 성도들과 생이별을 하며 미국 이민 길...
    Views6326
    Read More
  17. 눈물의 신비

    인체에서는 여러 분비물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눈물은 신비자체이다. 슬퍼서 울 때 나오는 것이 눈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감동을 받거나 웃을때에도 눈물은 나온다. 우리 세대의 남자들은 눈물 흘리는 것을 금기시했다. 오죽하면 공중화장실 남성 소변기 벽에...
    Views7049
    Read More
  18. 당신도 제주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마냥 생각에 잠기고 아름다운 풍경을 좇아 거닐며 내 삶을 깊이 돌아보고 싶은때가 있다. 한민경 씨. 그녀는 어느 날 김치찌개를 먹다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rd...
    Views6694
    Read More
  19. 전신마비 첫 치과의사

    삶에는 시련이 있다. 하지만 극한 장애가 찾아온다면 견뎌낼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온몸이 마비되는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상황을 역전시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공이 있다. 이규환 교수. 그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치과 진료를 하...
    Views7280
    Read More
  20. 하숙집 풍경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던가? 내가 고교시절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꽤 많았다.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는 하숙을 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취를 했다. 하숙집에는 많은 학생들이...
    Views675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