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선 11/13/15

by 관리자 posted Dec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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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jpg

 

나의 아버지는 엄한 분이였고 항상 어려웠다. 동리 분들과 어울리실 때는 퍽 다정다감한 것 같은데 자식들 앞에서는 무표정이셨다. 그것이 사춘기시절에는 못 마땅했다. 이유 없는 반항을 하며 대들어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셨다. 나이가 들어가며 아버지가 결코 아들을 소홀히 한분이 아님을 알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 나이 20대 초반, 아버지는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으신 채 먼 길을 떠나셨다.

 

희한하게 그때부터 ‘새록새록’ 기억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되새기며 눈물을 훔쳐야 했다. 표현을 안 하셨을 뿐이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셨던 분이었음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엄마는 눈에 보이게 자식을 사랑한다. 아버지는 저만치에서 지긋이 자식을 바라보며 사랑한다. 세월이 지나며 깨닫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엄마의 사랑보다 더 깊고 지극하다는 사실이다.

 

“김한석”이란 개그맨이 있다. 오래전에 “이상아”라는 유명 배우와 결혼을 해서 행복했는데 어찌어찌 일이 꼬여 두 사람의 갈등은 깊어지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매스컴을 통해 “김한석”은 파렴치한 사람으로 매도된다. 공인이 온갖 추문에 몰려 이혼을 했으니 딱히 할 일이 없는 백수신세가 되었다. 김한석은 아버지에게 “배추장사를 하려니 트럭을 하나 사 주세요.”라고 청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아들에게 중고차를 내어주며 “네가 수십년 쌓아놓은 연예계 생활을 이렇게 포기하려 하느냐? 나가서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을 해봐라.” 말씀하셨다.

 

김한석은 차를 몰고 1주일을 쏘다니게 된다. 친분이 있는 방송국 PD를 만나 부탁을 하지만 이미지가 실추한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으로 “밤무대에 출연해 달라.”는 연락이 오게 된다. 기름 값도 없이 궁핍해진 그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드디어 첫무대에 올라 “안녕하세요. 김한석입니다. 즐거운 시간을 가지십시오.”라는 첫 멘트를 하자마자 아줌마 부대들이 다 일어나서 나온다. 안주, 과일, 컵을 들고 나와 무대에 선 김한석에게 던지면서 “너는 나쁜 놈이다. 죽인다.”며 난리가 났다. 옷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었다.

 

낙심하고 집에 박혀있는데 밤업소 사장에게서 3일 만에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계속 나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가보니 “김한석이 온다.”고 손님이 미어졌다. 김한석이 봉변을 당하던 말건 매상과 매출이 오르니 사장은 ‘좋아라!’ 했던 것이다. 여전히 무대에 오르면 오물이 날아왔다. 손님들이 던진 과일에 맞아 와이셔츠가 더럽혀 지는 수모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러면서 꼭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다다르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결심을 하고 차를 몰아 한강 쪽으로 내달렸다. 액셀레이터를 밟아 강으로 처박혀 자살을 하려고 결심한 것이다. 그 찰라에 김한석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한석아! 왜 안 들어 오냐? 지금 어디 있냐? 아들아 어디에 있니? 보고 싶다.” 아버지의 음성이 한석의 마음을 고쳐먹게 한다. 그때부터 적극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다.무대에서 죽기로 결심을 한다. 여전히 무대에 서면 오물이 날아왔다. “자∽ 던지세요. 지금은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입니다.” 어떨 때는 컵이 날아온다. 컵에 맞으면 아팠지만 “잘 던져주세요”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노력을 한 결과 1년 만에 통장에 돈이 모여 일산에 있는 아파트를 사게 된다. 김한석은 부모님을 새로 산 집에 모시고 간다. “아버님, 어머님. 이 아파트가 제가 일년동안 고생해서 모아 산집입니다.” 평소에 표현력이 없는 아버지가 조용히 아들에게 다가선다. 아들을 안아주며 “아들아,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석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

 

김한석은 지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왕성한 연예활동을 하고 있다. 인생은 고비를 넘어가면 밝은 빛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지금도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복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