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꽃은 핀다

by 관리자 posted Jan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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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처지가 좋아지면 꽃이 피었다고 표현한다. 여성을 비하한다는 위험성이 있지만 한때는 여성들을 곧잘 꽃에 비유했다. 바라만 보아도 그냥 기분 좋아지는 존재, 다르기에 신비로워서일까? 꽃을 보며 인상을 쓰는 사람은 없다. 어여쁜 꽃을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다가가 향기를 맡고 싶어한다. 계절을 따라 피어나는 꽃이 있기에 잠시 인생의 시름을 잊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인내와 기다림의 세월이 필요하다. 기다림은 고통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만큼 아름다운 때도 없는 것을 깨닫게 된다.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진 다음의 설움을 대비시켜 인간 삶의 아름다운 비애를 노래한다. 소망의 성취 뒤에 이어지는 상실의 슬픔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표현하여,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 주고 있다. 임신한 산모는 아이의 출산까지 기다려야 한다. 씨를 뿌린 농부는 땀을 흘리며 열매를 기다려야 한다. 시험을 치른 학생은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소위 성공했다는 분들의 살아온 발자취는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무던한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름다운 꽃도 사계절 내내 피지 않는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다. 꽃말이라는 것이 있어서 꽃이름보다 더 강한 향취를 사람에게 안겨준다. 꽃들은 저마다 사연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피어난다. 신화와 전설,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졸업식 때마다 가장 많은 꽃을 안아보았던 것 같다. 가난한 시절에도 졸업식이 열리는 학교 교문에는 꽃장사들이 성시를 이루었고, 주인공에게 그날만큼은 한아름 꽃다발을 안기며 추억을 담았다.

 

  꽃은 축하의 의미도 담겨있고, 위로의 상징으로 전달된다. 실로 다채로운 의미가 꽃을 통해 표현된다. 처음 L.A.에 이민을 와서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사람들을 보았다. 낯선 풍경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미 사람들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때는 꽃을 전달하며 화해를 제의한다고 한다. 여성들이 그렇게 꽃을 좋아한다나? 겨울에도 꽃은 핀다. 바로 동백이다. 보통은 찬 기운이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대지를 녹일때에 피는 꽃이 많은데 동백은 겨울에 핀다. 보통 11월 말부터 시작하여 겨울을 견디고 늦은 봄까지 만개하는 겨울꽃이다. 꽃은 지더라도 푸른 잎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어 아름답다. 꽃말은 색깔별로 다르다. “진실한 사랑”(빨간), “순결”(흰색), “그리움”(분홍)으로 이름까지 다채롭다.

 

  계절별로 피는 꽃이 다르듯 사람마다 전성기를 맞이하는 시기도 다르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개인이나, 국가의 번영을 곧잘 꽃에 비유한다. 정치, 경제, 언론, 연예계까지 소위 대기만성형의 인물을 발견한다. 동백이 피울 시기를 기다리듯 인고의 세월이 정점에 다다라 꽃망울을 터뜨리는 사람들 말이다. 참 귀해 보인다. 포기하고 싶고, 자기 한계를 느꼈을 때, 또래들이 대중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승승장구할 시점에 비교의식과 자괴감에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드디어 기다려온 세월이 열매가 되어 피어났을 때 그 꽃은 고귀하고 더 환하게 피어오른다. 반면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인생들은 심각하게 새겨야한다. 꽃이 오래가지 않듯 항상 잘 나가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돛단배를 즐겨 타던 때가 있었다. 건너편 부두에 당도하려면 사공은 먼저 땀을 흘리며 강 상단으로 배를 움직인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면 물이 흘러내려 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노를 저어야 한다. 어느 시점부터 기수를 건너편으로 향하고 힘써 노를 짓기 시작한다. 당일의 물살과 건너편까지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잡아 정확하게 도달시키는 것이 뱃사공의 사명이요, 실력이었다. 일단 실력을 갖춰 놓아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꽃을 피우는 것보다 그 꽃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이 실력중에 실력이다. 성취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고 초조 해 할 것도 없다. 모든 꽃이 봄에 피는 것은 아니다. 겨울에도 꽃은 핀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에만 써야 한다. 새해에는 각종 꽃을 활짝피워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