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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풍경.jpg

 

 

 사계절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다. 철이 없을 때는 기온의 차이로만 느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계절의 감각이 새롭게 다가온다. 여자는 봄에 예민하고 남자는 가을을 타는가보다. 봄의 의미는 신비이다. 여자는 참으로 신비한 존재이다. 사춘기 시절에 접어들며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학생을 만나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참 많았다. 실로 여자는 한마디로 알다가도 모를 존재였다. 만날 때마다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필자는 누나와 여동생 사이에서 자랐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여자에 대해 익숙해 질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형제와 여자는 달랐다.

 

 중학교 3학년 때 “김소월 시집”을 만났다. 김소월은 시인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많은 여자를 만나며 시를 써나갔다. 소월이 쓴 여자들에 대한 내용의 시를 대하며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성교제를 나누며 그 시가 가슴에 와 닿았다. 남자의 특징은 단순성이다. 여자들처럼 복잡하지 않다. 백화점을 가도 남자는 어떤 물건을 사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 목적을 향해 돌진한다. 그래서 쇼핑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여자는 다르다. 예를 들어 7층이 내가 사야할 물건이 있는 매장이라면 1층부터 훑으며 올라간다. 그러니 쇼핑하는데 한나절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검증된 학설은 아니지만 남자가 삶의 무료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여자를 신비한 존재로 만들어 놓으신 것 같다.

 

 가을은 남자를 닮았다. 흔히들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꽃피는 봄날은 여자의 계절로 공인(?)되었다. 꽃이 있기에 봄이 여자의 계절이 되었을까? 물론 가을에도 꽃은 핀다.

 그러나 봄날에 피는 꽃과는 밀도와 습도가 다르다. 봄에 피는 꽃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기온이 가까워 옴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가을에 피는 꽃은 결실의 의미가 크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은 떨어지고 어느 날 흩날리게 될 눈발을 대비해야만 한다. 바람만 불면 떨어져 뒹구는 낙엽이 낭만적이기보다는 인생처럼 느껴지면서 왠지 모를 고독을 느끼게 하는 때가 가을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가을을 탄다.’는 것도 어색한 느낌이 든다. 가을이 되면 베이지색 바바리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넣은 채 마냥 걸어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말이다.

 

 필자는 홍릉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집에서 홍릉까지는 마로니에가 가로수로 길 양쪽에 서있었다. 어슴프레한 저녁 무렵에 넓적한 마로니에 잎이 아스팔트 위에 뒹구는 모습을 보며 길을 걷는 것은 남다른 낭만이었다. 그 당시는 소규모의 전자대리점(전파사)이 많았다. 밖에 내어 놓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팝송이 주를 이루었지만 때로는 ‘배호’ ‘패티 김’의 노래도 흘러나왔다. 걷다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찐빵 집” 간판이 눈에 들어오고 홍릉 앞에 좁은 인도를 위험스레 지나가면 드디어 은행나무 가로수가 반기기 시작한다. 역시 가을하면 노오란 은행잎이 그 의미를 더한다. 노오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걸어본 일이 있는가? 누가 같이 가는 것도 아닌데 그 은행잎을 두 손으로 움켜쥐어 공중에 날려 본 적이 있는가? 눈을 감으면 그 가을그림이 영상처럼 스쳐간다.

 

 가을비가 세월을 재촉한다. 6일부터는 일광 절약 시간제(Daylight saving time)가 해제된다. 이제는 밤과 친해져야 하는 계절이다. 40년 지기 절친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Valley Forge”를 두루 거닐며 가을에 잠겨보았다. 사람은 아름다운 추억이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높단다. 그대에게는 스쳐가는 가을을 붙잡을만한 에너지가 있는가? 무작정 가을을 타고 싶다. 커다란 행사를 감당한 후에 오는 공허감을 가을로 채우고 싶다. 더 붉고 아름답게 타오를 가을단풍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내 젊은 날에 친구였던 ‘기타’를 들고 공명이 잘되는 계곡 속에서 그 옛날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싶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패티 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김광석) “가을 우체국 앞에서”(윤도현) 그런 노래를 부르다보면 생각지 않았던 가을 그림이 새롭게 하늘을 수놓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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