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지 않고도 스스로 감옥행을 택한 이들이 있다. 감옥은 자유를 구속하는 곳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통찰력을 기르는 깨달음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쇠창살만 없지 영락없는 교도소다. 5㎡(1.5평) 남짓한 독방 28개가 복도를 마주하고 위아래로 늘어서 있다. 각 방에는 세면대와 변기가 있고, 식사도 배식구를 통해 넣어 준다. 강원 홍천군 남면 용수리에 마련된 사단법인 행복공장의 <내 안의 감옥>이다. 행복공장은 ‘독방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개개인이 행복해지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20대부터 70대까지 나이는 물론 직업도 모두 다양하다. 이들은 마치 교도소 수감자들처럼 번호표가 붙은 수의 비슷한 옷을 입고 독방에 들어가 24시간 동안 수감자가 된다. 오후 2시, 방 안에는 간단한 침구와 세면대가 달린 화장실, 그리고 필기도구만 있다. “처음 들어갔을 때 문이 ‘찰칵’ 하고 잠기는데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그 ‘찰칵’ 하는 소리가 가슴을 두드려요. ‘내가 갇혀 있는 거지, 이제 내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는 거고, 나는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생각들이 올라오더라고요.” 한사람은 ‘아, 어떻게 견디지?’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단절된 느낌, 뭔가 끊어지는 느낌에 ‘살짝’ 두렵기도 했던 것이다.
핸드폰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고 TV. 인터넷이 없이는 갑갑해서 견디지 못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다 끊어버리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다.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현직 변호사는 원인모를 눈물이 흘러 주체를 못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그리 바쁘게 달려왔던가?’에 대한 회한이었다. 중직 회사원은 그냥 누워 허공을 주시하며 몇 시간을 보낸다. 어떤 사람은 몇 시간이나 좁은 감방을 서성인다. 그러다가 ‘내가 스스로 이곳에 온 것이 다행이다. 정말 죄를 짓고 감옥에 갇혔다면 어쩔 뻔했을까?’하며 자신을 위로한다.
두려움 반, 기대 반-그렇게 사람들은 각자 독방에서 24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목적은 ‘나를 찾는 것’이었다. 너무 바쁘게 살아온 삶을 잠시 멈추고 <감옥>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생각 끝에 ‘유언장’을 작성해 보기로 한다. 그는 말한다. “그런데 그건 너무 빨리 끝나더군요. 그걸 쓰는 데 딱 10분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언장을 쓰며 심연 깊이 숨어있는 “욕심”을 끌어내는데 성공한다. ‘아, 그래. 모든 것이 내 욕심에서 시작되었구나!’
독방의 유리창은 날이 어두워지며 거울이 된다. 그리 선명하지는 않지만 창문 거울에 비추어지는 얼굴을 대하며 사람들은 또 다른 명상에 잠긴다. ‘아직도 내가 버려야 할 게 많구나. 혼탁한 구석이 많구나.’ 큰 깨달음은 없었지만 모처럼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사람들은 독방에서 체험한다. 현직 교수는 독방에 들어가자마자 잠부터 잤다. 깨어나니 불현듯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 시작했다. ‘기뻤던 일, 잘못했던 일들, 행복했던 순간들.’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다가 ‘만약 지금부터 1년만 살게 된다면?’ 질문을 던진다. 가족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마지막 1년을 즐기다 가리라!’ 생각하다 ‘피식’ 웃는다.
왜 사람들은 하필 독방에 스스로 갇힌 것일까? 혼자 있기 위해서이고 결국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드디어 독방에 갇혔던 시간이 끝나고 24시간 만에 감옥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샤워하고 난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완전히 깨끗한 건 아니더라도 한결 정신이 맑아지고 차분해졌다. 충전을 한 것 같다.”는 소감이 이어졌다. 알면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을 독방체험을 통해서라도 실천해 보려는 현대인들의 몸부림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작은 방에 혼자 머무르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과연 기독교는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면서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삶의 현주소를 점검해보는 것도 지혜라는 깨달음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