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 부부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보기에도 퍽 아름답고 유익한 신앙인들의 모임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낮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며 사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짧은 언어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유학생활은 참으로 버거운 과정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편안한 법. 서로의 피곤한 삶을 함께 공유하고 위로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함께 기도해 주는 성숙한 신앙적 모임에서 오히려 내가 은혜를 받았다. <인간관계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에 문득 한 형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었다.
그는 내 뱉듯 입을 열었다.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지만 아내와의 불화만큼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한바탕 싸운 후 헤어지기로 마음먹고 보따리를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갔다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이래서는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다시 되돌아오고야 말았습니다.” 힘든 유학생활로 인하여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급기야는 파탄지경까지 이른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부부문제로 인해 파급된 교회 안에서의 힘든 인간관계를 눈가에 이슬을 비치며 이야기하는 그 형제를 바라보며 모두가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내면의 문제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살아온 지체들로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러나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이 형제를 바라보며 모두가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내와 크게 한바탕 다툰 후 짐 보따리를 차 트렁크에 싣고 공항으로 달려가는데 뒤에 타고 있는 아내는 계속 울고만 있을 뿐(공항에서 차를 다시 집으로 가지고 와야 하기 때문에 아내가 따라갔단다) ‘가지 말라든지, 내가 잘못했다든지’ 하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만 해주면 자기도 고집을 꺾고, 못이기는 척하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때 아내가 얼마나 야속하고 미웠는지 정말 홧김에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항 개찰구에서 보딩을 하려고 들어가려는 순간 돌아보니 두 딸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아내의 눈이 퉁퉁 부어있더란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아내가 갑자기 한없이 불쌍한 마음이 들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몇 발자국 들여 논 뒤에 다시 개찰구를 돌아 나와 아내를 꼭 안아주고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못나게 행동했다”고 사과를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이 남편의 고백을 듣던 형제들은 웃기도 하고 눈물을 찍어내기도 하면서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하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자신들의 어려운 유학생활을 앞 다투어 끌러 내놓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아내와의 불화와 자녀교육의 어려움이 가장 큰 화제 거리였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밤을 새웠는데 이구동성으로 모두가 그동안 피상적인 삶의 겉 부분만 이야기하고 사역적인 측면이나, 공부하는 일로만, 혹은 신학적 토론만 즐겼지 이렇게 실제적인 자신들의 실패담이나 삶의 아픈 부분들을 이야기하지 못했었다고 고백을 하였다.
무척 마음이 시원하다는 사람, 위로해주고 격려를 받으니 다시 살 힘이 생긴다는 사람, 나만 고생하고 힘들게 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이들은 더 큰 고통을 견디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위로가 된다는 사람, 아내들도 이러한 시간을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은 다 약한 존재이다. 다들 행복해 보이지만 들어가 보면 가정마다 상상하지 못할 아픔이 다 있다. 내가 용기를 내어 나의 숨겨진 고통을 드러내면 듣는 상대의 내면에는 치유(治癒)가 일어나게 된다. 사람은 나보다 더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고야 위로를 받는 묘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야만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