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48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untitled.png

 

 나이가 들어가며 깊이 깨닫는 것은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교훈이다. 물론 다른 일이라고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문제에 대해서 자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자식농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남부럽지 않게 아이들을 키웠고 당당하게 미국 한복판에서 당차게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보다 더 사랑해 주지 못했고 풍족하게 뒷바라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목사로서 신앙적인 피드백을 충만히 공급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럽다.

 

 어린 아이와 싸우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그때 부모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난 자식이 아닌 것 같아요.” 20대 초반의 한 여대생이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리도 순종적이던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결심을 한 것 마냥 부모를 거역하기 시작했다. 무서워하던 아버지에게 마구 대들고 어느 날은 술을 먹고 들어와 주정까지 해댄다. 화가 난 아버지는 딸에게 손찌검을 했고 기가 죽기는커녕 딸아이는 바락바락악을 쓰면서 대든다.

 

 그때 아버지는 깨닫는다. 자기 딸이 복수를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는 학교다, 상담이다, 신학이다하며 공부를 시작한다. ‘그런 아버지가 가증스럽다.’고 딸은 조롱한다. 이제 알콜 중독이 되어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어렵게 된다. 맥주를 10병 이상씩 먹고 다 개워낸다. 그것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엄마를 보면 불쌍하고 아버지를 보면 분노가 불꽃처럼 일어난다. 엄마를 안고서는 흐느껴 울고 아버지에게는 욕설 아니면 냉대이다.

 

 상담에 들어갔다. 어렸을 때에 아버지로부터 무지하게 많이 맞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기 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때리고, 나가서는 바람을 피우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살았고 어머니와 자기는 늘 피해자고 희생양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딸은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크면 어떻게든 복수하고 말 거야.’라고. 아버지가 하소연을 한다. “내가 죄 값을 단단히 치르나 봐요. 나는 그렇게 때린 기억이 없는데, 우리는 더 맞고 자랐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잘 할까 했잖아요.”

 

 그 아버지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함께 우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울고 난 후에 나는 그 아버지 앞에 딸을 세웠다. 그리고 고백하게 했다. “딸아, 미안하다. 이 아빠를 용서해다오. 내가 몰라서 그랬단다. 너는 하나 뿐인 사랑하는 나의 딸이고 나는 너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빠란다.” 그제서야 딸은 정신이 드는듯하였다. 자신 앞에 엎드려 잘못을 인정하며 울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젊을 때는 모르고 자식을 키운다. 우리 세대는 부모로부터 살가운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아버지 다와서가 아니었다. 그나마 엄마는 친구이자 기댈만한 작은 언덕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되었다.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어찌 사랑을 줄까? 본 것이 없으니 그냥 키웠다. 우리는 몰랐다. 아이들이 그렇게 빨리 커버릴 줄은. 부모의 권위 앞에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부모 말을 받아친다. 그것도 논리정연하게 말이다. 그제서야 자식들을 방목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한다.

 

 그것을 아는 날 비로소 어른이 된다. 내 자식들을 내가 낳아 내가 키운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은 자식들이 부모들을 키우느라 애를 참 많이 쓴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상처 받아 가며, 벌 받아 가며, 집 밖으로 쫓겨나가며, 맞아줘 가며, 앓아누워 가며 말이다. 자식들을 내가 낳고 내가 키우는 동안 반대로 자식들은 나를 부모로 낳고 사람 되라고 키워 놓는다. 그 녀석들을 내가 낳고 키우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사람이 되고 컸겠는가?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생애 한번쯤은 자식들에게 용서를 빌고 나의 부족과 무지를 고백하는 나의 날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나의 날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1. 평창의 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선생님이 한창 올림픽에 관한 설명을 하고 계셨다. 손을 들며 내가 물었다. “선생님, 왜 우리나라에서는 올림픽이 열리지 않죠?”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셨다. “우리나라는 너무도 작고 게다가 그런 큰 ...
    Views51
    Read More
  2. 때 밀어 보셨어요?

    미국에 와 살면서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매일 샤워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머리를 감거나 세수는 하지만 샤워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한국의 욕실구조의 영향인 것도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여름이면 그냥 ‘멱’을 감고 살았...
    Views359
    Read More
  3.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깊이 깨닫는 것은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교훈이다. 물론 다른 일이라고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문제에 대해서 자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자식농사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Views485
    Read More
  4.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 I have a dream! >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
    Views761
    Read More
  5. 발효 인생

    열매나 음식은 저마다 독특한 향과 모양, 맛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형체와 냄새가 바뀌며 화학적 변화를 시도한다.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다. 가만히 두었는데 전혀 희한한 향과 맛을 창출해 낸다. 노아가 그것을 경험했다. 홍수이후 탐스러운...
    Views684
    Read More
  6. 머리의 의미

    젊었을 때에는 머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멋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머리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웠다. 우리 시대에는 ‘상고머리’라고 해서 옆머리와 뒷머리 아래는 짧게 깎고 윗머리는 예쁘게 다듬...
    Views806
    Read More
  7. 삶은 무엇인가?

    나의 재산 중에 하나는 친구들이다. 어떤 사람은 “작으면서도 깊게 사귄다.”고 하는데 나는 특이하게 넓고 깊게 사귄다. 그 어느 누구도 열외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친구가 많다. 한결같고 정 많은 친구들이 있어 나는 어디를 가든지 행복...
    Views962
    Read More
  8. 2018년/ 이제 다시 시작이다!

    대망의 새해가 밝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사연을 안고 새해의 품안에 안긴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곧 익숙해 질 것이다. 우리는 당연한 마음으로 새해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지만 세상을 떠나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년이 2018년이다. 영어로 선...
    Views953
    Read More
  9. 참, 고맙습니다!

    2017년이 단 이틀 남았다. 돌아보면 은혜요, 일체 감사뿐이다. 고마운 분들을 그리며 금년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다. 그때그때마다 다가와 위로해 주던 많은 사람들,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사역에 힘을 실어주는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린...
    Views1026
    Read More
  10. 깡통차기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나서며 찌그러진 깡통 하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툭툭’치고 가다가 시간이 지나며 ‘사명감’(?)에 차고 나가고, 나중에는 오기가 발동하면서 집에 올 때까지 ‘깡통차기’는 계속된다. 잘...
    Views1176
    Read More
  11. 특이한 언어 자존심

    사람은 말을 해야 사는 존재이다. “언어가 통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아무리 재미있는 ‘조크’도 알아듣지 못하면 전혀 효과가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따라서 한국말을 쓴다. 그런데 우리가 ...
    Views1092
    Read More
  12.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산다

    인생을 살다보면 억울하고 답답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구치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내 불찰과 잘못으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순항하던 내 삶에 난데없는 사람이나, 사건이 끼어들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정작 울려고 하는데 눈물이...
    Views1037
    Read More
  13. 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한 순간, 한 마디의 말, 한 사람이 인생전반에 은은한 잔영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문득 삶을 되돌아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등학교 3학년, 예...
    Views1137
    Read More
  14. 살아있는 날 동안

    아르바이트 면접에 합격한 아들은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엄마는 “공부하라”며 아들의 아르바이트를 말렸다. 아들은 ‘어려운 가정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러나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
    Views1388
    Read More
  15. 공항의 두얼굴

    1970년대 공항에 대한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공항 대합실”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의 이별” 가수 ‘문주란’은 굵고 특이하면서도 구성진 창법으로 연속 히트를 쳤다. 그때만 해도 특권층만이 국제 ...
    Views1205
    Read More
  16. 꼰대여, 늙은 남자여!

    사람은 다 늙는다. 여자나 남자나 다 늙어간다. 나이가 들어가는 서러움을 달랠량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소리쳐 보지만 늙어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젊은이들에게 나이든 남자의 이미지를 물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Views1565
    Read More
  17. 아미쉬(Amish) 마을 사람들

    사람들은 유명하고 소중한 것이 가까이에 있으면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우리로 말하면 “아미쉬 마을”이다. 아미쉬는 푸르른 초원을 가슴에 안은 채 특유의 삶을 이어간다. 아미쉬의 특징은 전기, 자동차, 텔레비전 같은 문명의 이기를 철저...
    Views1368
    Read More
  18. 기다림(忍耐)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지 짧은 시간에 큰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 조급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백성...
    Views1167
    Read More
  19. 감성 고뇌

    가을이 왔는가보다 했는데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의 농도는 아직도 여름을 닮았다. 금년은 윤달이 끼어서인지 가을이 더디 오는 듯하다. 따스한 기온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어 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방해가 되는...
    Views1311
    Read More
  20.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유학생 부부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보기에도 퍽 아름답고 유익한 신앙인들의 모임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낮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며 사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짧은 언어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유학생활은 참으로 버거운 과정이다. 같은 ...
    Views159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0 Next
/ 20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