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76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김일.jpg

 

 

  “엄마, 오늘은 제발 보리밥 싸지 마세요.”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열면 널브러져 나를 바라보는 보리밥이 너무 미웠다. 거기다가 단골 반찬은 무말랭이와 콩장이었다. 내 짝꿍 근웅이는 약국집 아들이라 그런지 항상 밥 위에는 노오란 계란이 덮여 있었다. 그게 왜 그리 부러웠던지?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가 열렸다. 이상하다.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맛있던 음식이 이제는 옛 맛이 느껴지질 않는다. 김도 어릴 때 먹던 맛이 아니고, 계란 맛도 예전 같지 않다.

 

  음식뿐이 아니다. 눈과 귀도 고급화 되어가는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T.V.는 고사하고 변변한 라디오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이던가? 이장 댁에서 방송기계를 구비해 놓고 집집마다 연결 해 스피커를 설치하였다. 하루 종일 KBS만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 자그마한 스피커에 우리는 울고 웃었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미국의 소리는 잡음이 하도 심해서 들렸다 안 들렸다 했지만 장기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낭랑하기만 했다. 우리 아이들의 최고 인기 프로는 국군의 방송이었다. 특히 총소리가 많이 나오는 드라마는 우리의 가슴을 들뜨게 하였다. 지게 작대기나 막대기를 들고 아랫입술을 털며 내던 기관총 소리. 이산 저산을 뒹굴며 우리는 총싸움을 했다. 그럴듯한 포즈를 잡으며 마치 용감한 국군 용사라도 된 것처럼 편을 갈라 드라마 흉내를 냈다. 얼마 후 트랜지스터가 나오면서 듣는 방송이 다양화 되었다.

 

  드디어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했다. T.V.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 당시 텔레비전을 가진 가구는 특수층이었다.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텔레비전 보여줄까?” 이 한마디에 그에게서는 엄청난 카리스마(?)가 풍겼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시청하던 드라마. 흑백 T.V.에 지금 생각하면 허술한 세트였지만 그때 드라마는 몸의 전율이 일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1970TBC를 통해 방영된 아씨”. 72KBS여로는 아직도 우리세대 가슴에 남아있다.

 

  텔레비전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프로 레슬러 김일이다. 어쩌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리면 지금 월드컵 축구 경기가 열리듯 온 동네가 술렁거렸다. 그때에는 군청에서 커다란 T.V.를 건물 창으로 보게 하여 군청 마당 응원이 펼쳐졌다. 어린 눈으로 본 김일 선수는 멋이 있었다. 타국 선수들이나 다른 한국 선수들은 인상이 가벼워 보이지만 김일은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에 믿음직스러웠다.

 

  호랑이와 담뱃대가 그려진 비단 가운을 입고 링에 오르는 김일. 가운을 벗어젖히면 근육질의 몸이 드러난다. 레슬링 경기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김일은 금방 상대 선수를 쓰러뜨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당하고, 어떤 경우에는 무참하게 맞기만 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의 이마가 상대방의 이마에 작렬한다. 김일의 주무기인 박치기가 작동하는 찰나이다. 김일이 박치기를 하면 안 쓰러지는 선수가 없었다.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김일은 우리의 자존심이었고, 민족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치유자였다. 정말 김일은 한국이 낳은 황금이마였다. 그가 박치기로 거구의 서양레슬러들을 쓰러 뜨릴때에 우리도 함께 응원하며 김일의 박치기 흉내를 냈다. 아무것이나 들이받으면서 친구들은 점점 머리가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미국 한복판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요 속에 파묻혀 소중한 것들을 다 망각 해 버린 것 같다. 행복 지수는 점점 낮아져만 간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추억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부자이다. 눈을 감고 생각하면 그때는 모든 것이 소중했다. 이 더운 여름, 잠시 생각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자. 그리고 어린 날 마냥 행복 해 했던 그 순간에 머물며 지친 삶을 잠시 추스려 보자. 소박하지만 순수하고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 해 보자.

 


  1. No Image

    쇼윈도우 부부를 만나다

    지난 봄 한국 방문 길에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가득히 사람들이 타고 결혼식장인 10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안쪽에 서있던 한 여인이 소리쳤다. “친한 척 하지 마요. 조금 떨어져 와...
    Views16
    Read More
  2. No Image

    목사님, 세습 잘못된 것 아닌가요?

    요사이 한국을 대표할만한 한 대형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일을 놓고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음에도 그 교회가 속한 교단과 신학대학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 교회신자들의 압도적인 지지...
    Views94
    Read More
  3. 기회를 잡는 감각

    인생은 어쩌면 기회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신은 평생 사람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세 번 허락한다고 한다. 가만히 내 인생을 돌아보라! 기회가 많았다. 기회를 기회로 잡지 못하면 흘러간 시간이 되고 만다. 매사에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희한한 사...
    Views218
    Read More
  4. 낙도전도의 추억

    대학 동기가 병역을 필하고 복학을 하더니 적극적인 총학생회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사이 나는 이미 대학원 과정에 있었기에 친구와는 학년차이가 꽤나 나있었다. 어느 날 만나자고 하더니 “총신 <제 2기 낙도전도단>에 총무로 일해 달라.&rdquo...
    Views296
    Read More
  5. 청춘

    여름은 청춘을 닮았다. 얼어붙은 동토를 뚫고 빼꼼이 고개를 내어밀던 새순은 여름의 비와 바람을 맞으며 단단해져 간다. 따가운 햇살과 공격해 오는 해충의 위협을 의연히 견뎌낸 줄기만이 가을의 넉넉한 열매를 보장받게 된다. 여름은 싱그럽지만 그래서 아...
    Views359
    Read More
  6. 씨가 살아있는 가정

    가정은 영어로 Family이다. 어원을 살펴보니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이다. 절묘하다. 실로 부부의 사랑을 먹고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꿈을 펼쳐야 하는 곳이 가정이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가정을 꾸미면 저절로 행복해 질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는데 심...
    Views389
    Read More
  7. 밀알 사랑의 캠프

    지난 5월이었다. 밀알선교단 지하교육관에 걸어놓은 달력이 찢겨나가 7월에 와있었다. 다른 방에 걸려있던 달력과 바꿔 걸어놓았는데 나중에 가보니 그것마저 찢겨져 있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수소문해도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누가 저렇게 멀쩡...
    Views539
    Read More
  8. 소박한 행복 기억하기

    “엄마, 오늘은 제발 보리밥 싸지 마세요.”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열면 널브러져 나를 바라보는 보리밥이 너무 미웠다. 거기다가 단골 반찬은 무말랭이와 콩장이었다. 내 짝꿍 근웅이는 약국집 아들이라 그런지 항상 밥 위에는 노오란 계란이 덮여...
    Views763
    Read More
  9.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어린 시절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여름 이맘때가 되면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졌다. 밤새 공포에 떨다가 날이 밝고 화창해진 아침, 들녘에 나가보면 곡식들이 내 키만큼 자라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번개가 치면 하늘에서 수...
    Views1377
    Read More
  10. 차카게살자!

    한때 조직폭력배(이하 조폭) 영화가 희화화되어 유행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은 전혀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그 세계에서는 펼쳐지고 있음이 세상에 조금씩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발동하기 시작하였다. 실로 어둠의 세계일진대 영화나 소설이 은근히 ...
    Views1141
    Read More
  11. 패럴림픽의 감동

    우리조국 대한민국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숨죽이며 시청하던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올림픽에 관한 공부를 할 때에는 먼 나라 일로만 생각되었는데 막상 그 올림픽이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열린다는 ...
    Views1330
    Read More
  12. 미안하고 부끄럽고

    매일 새벽마다 이런 고백을 하며 기도를 시작한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 어제 잠자리에 들며 죽었다면 오늘 아침 다시 부활한 것이다. 지난밤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시 깨어났으니 이것...
    Views1013
    Read More
  13. 야학 선생

    20대 초반 그러니까 신학대학 2학년 때였다. 같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김건영 전도사께서 주일 낮 예배 후 “할 말이 있다.”며 다가왔다. 우리는 비어 있는 유년주일학교 예배 실 뒤편 탁자에 마주 앉았다. 용건은 나에게 “야학 선생을 해 달...
    Views1073
    Read More
  14. 광화문 연가

    나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에서 풍기는 젊음의 활력, 에너지 넘치는 춤사위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사람의 몸이 저렇게도 유연할 수 있을까?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요는 정적이었다. 뭔가 생각하며 들을 수 있는, 듣다보면 젖...
    Views1369
    Read More
  15. 톡 쏘는 느낌을 갖고 싶어~~

    미혼 시절에는 이성에 반하는 타입이 다채롭다. 남자들은 공히 곱게 빗어 넘긴 생머리에 청순가련형의 인상을 가진 여성들에게서 시선을 놓지 못한다. 반면 여성들은 과묵한 남자에 끌린다. 촐싹대고 말이 많은 남자보다는 묵직한 인상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Views1615
    Read More
  16. 슬프고 안타까운 병

    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포천 큰댁으로 달려갈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드디어 방학을 하고 시골에 가면 집안 어른들에게 두루 다니며 인사를 하고 후에 누이와 가는 곳이 있었다. 바로 외가댁이었다. 걸어서 30분이면 외가에 도착을 했고 ...
    Views1726
    Read More
  17. 어머니∼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이 있다. 바로 어머니이다. 나이가 들어도 안기고 싶은 곳은 어머니 품이다. ‘남자는 평생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며 산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결혼을 위해 많은 교제를 하다가도 결국은 어머니 같은 여인과 결혼을 하...
    Views2055
    Read More
  18. 손을 보며

    손을 들여다본다. 손등이 눈에 들어오고 뒤집으면 바닥이 매끄럽게 드러난다. 각각 다른 길이의 손가락이 조화를 이룬다. 손가락을 구부려 움켜쥐면 금새 동그란 주먹이 만들어 진다. 손가락마다 무늬가 새겨있는데 지문이라 부른다. 지문이 같은 사람이 없다...
    Views1400
    Read More
  19. 있을 때 잘해!

    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왔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넣으면서 차의 앞 유리를 닦아준다. 기름이 다 들어가자 직원은 부부에게 다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럽네요. 한 번 더 닦아주세요.”라...
    Views1693
    Read More
  20. 저는 휠체어 탄 여행가입니다

    장애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다. 장애인들은 내달리는 차에 올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무척이나 즐긴다. 일명 휠체어 여행가가 있다. 홍서윤. 그녀가 주인공이다. 자신을 휠체어 탄 여행가라고 소개하면 주위 사람들은 다들 깜짝 놀란 얼굴...
    Views180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