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목인 "Whale Done!"인 이 책은 범고래가 조련사의 손에 길들여져 사람들 앞에서 멋진 쇼를 보여주는 현장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조근조근’ 그려가고 있다. 대중 앞에서 범고래가 많은 기술을 습득하여 “쇼”를 하기까지는 사육사와 고래와에 친밀한 교감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범고래를 처음 데리고 오면 몇 달 동안은 사육사와 같이 지내고 먹고 장난치고 놀면서 서로 간에 신뢰감을 조성하게 된다. 서로 간에 신뢰감이 조성되면 그때부터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기술을 가르칠 때에 꾸짖고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즐기면서 놀면서 가르치는데 중요한 점은 “긍정적인 측면을 보라”는 것이다. 긍정적인 행동을 했을 때 관심을 가져주고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 주면 고래는 자신의 장기를 극대화하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비난과 핀잔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며 칭찬해 줄때 삶의 숨어있던 에너지가 방출된다. 우리 세대는 칭찬과는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냈다. 세계 교육방식을 훑어보면 어릴 때부터 지지와 격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꿈을 피력해 가는 것을 본다. 한 아이가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집이 크고 마당이 꽤나 넓어서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는 좋은 환경에서 성장을 하였다. 옛날에는 겨울철이 되면 아이들은 직접 팽이를 만들어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다. 그도 그랬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는 넓디넓은 자기 집 마당이 아닌 늘 바로 윗집 마당에 가서 팽이를 쳤다고 한다. 그 윗집은 작고 마당도 손바닥만 했다. 따라서 팽이채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매일 아침 눈만 뜨면 팽이채를 들고 윗집 마당에 가서 팽이를 쳤다. 소년은 왜 자기 집 넓은 마당을 놓아두고 그 좁은 윗집 마당에 가서 팽이를 쳤을까요?
자기네 집 넓은 마당에서 팽이를 돌리면 보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혹시 누군가 어른들이 보면 “야, 이놈아. 먼지 난다. 논 위에 얼음에서 치든지 하지 왜 마당에서 이러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윗집, 작은 집에는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한분 살고 계셨는데 이 할머니는 건강하지 못하셔서 매일 툇마루에 나와 앉아 하루 종일 햇빛을 쬐는 일이 유일한 일과였다. 소년이 그 집에 가서 팽이를 치면 이 할머니는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마루 끝에 앉으셔서 계속 말씀하신다. “야! 그 놈 잘 친다. 이 동네에서 네가 팽이를 제일 잘 돌린다. 넌 팽이 선수다.”라고 칭찬을 한다. 마당이 비좁아서 소년이 팽이를 치기에는 불편하였다. 그래서 번번히 팽이가 쓰러졌다. 그래도 할머니는 “야! 잘한다. 한번 더해봐라!” 하셨다. 이 몇 마디 격려에 소년은 신이 나서 매일 아침마다 그 좁은 윗집 마당에서 먼지를 ‘풀풀’ 날리면서 힘차게 팽이채를 휘둘렀다.
“앤소니 드 멜로”가 쓴 「개구리의 기도」라는 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미국인이 일본으로 골프 관광을 갔다. 골프장에 갔더니 경험 많은 캐디들은 이미 그린으로 나가고 처음 들어와서 골프장에 코스도 잘 모르고, 골프 규정도 잘 모르는 열다섯 살 먹은 소녀 한명이 남아있었다. 불만이었지만 이분은 소녀를 캐디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 미국인은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 소녀를 내내 캐디로 썼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 소녀는 그 사람이 골프공을 칠 때마다 결과하고는 상관없이 날아가는 공을 향해 발을 구르면서 감격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Dammed, Good Shot!” 그 뜻을 직설적으로 통역하면 “와! 더럽게 잘치네”이다. 그 일본 소녀가 알고 있는 영어라고는 유일하게 이 한 문장이었다나.
사람은 칭찬을 먹을 때에 행복해 진다. 따지기보다 속아주고 넘어가 주자. 만나는 그 사람의 좋은 모습을 칭찬하자. 이왕이면 기분 좋은 말을 건네 보자. 말 한마디가 사람을 구름위에 날게 한다. 오가는 예쁜 말 속에 미소가 번지고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