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 장애인 김진희

by 관리자 posted Apr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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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jpg

 

 인생을 살다보면 벼라 별 일을 다 겪게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일이 현실로 닥쳐올 때에 사람들은 흔들린다. 그것도 불의의 사고로 뜻하지 않은 장애를 입으면 당황하고 좌절한다. 나처럼 아예 갓난아이 때 장애를 입은 사람은 체념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인다. 어리디 어린 나이에 내 몸은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구나!’부터 깨달아야했다. 기우뚱 거리는 몸을 내가 스스로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 친구들에 비해 보행속도가 현저히 느릴 뿐 아니라 금방 지쳐버린다는 것을 알아야했다. 그러면서도 지지 않으려고 아이들과 몸을 부대껴가며 놀이를 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덕분에 많은 친구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건강하게 살던 사람이 중도에 사고나 질병으로 신체일부를 절단했을 때에 그 충격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다. 큰 키, 스커트 밑으로 쭉 뻗은 그녀의 다리를 보고 사람들은 선뜻 김진희씨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오히려 긴 웨이브 머리에 선글라스를 즐겨 착용하는 멋쟁이로 보일 뿐이다. “어디를 다쳤다는 거죠?” 뒤늦게야 한 쪽 다리가 의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사람들은 놀란다. 얼굴 왼쪽의 흉터는 선글라스가 가리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당당함이다. 발을 헛디뎌 의족이 빠지거나 옆으로 돌아가도 그녀는 태연히 웃으며 길을 간다. “왜 부끄러워해야 하나요? 좀 불편할 뿐이에요.”

 

 경기도 의정부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그녀는 퇴근길에 중앙선을 침범한 5톤 트럭과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왼쪽 다리가 잘려 나가고 왼쪽 팔과 얼굴 등을 심하게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18개월간의 험난한 치료 끝에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녀는 살아 있다는 안도감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아픔을 절감해야 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몸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한 달 뒤면 어여쁜 봄의 신부가 되려던 꿈도 무참히 깨져버렸다.

 

 벽에 머리를 찍거나 약을 먹는 등 수 차례 자살 기도를 했다. 그러나 차라리 같이 죽자며 울부짖는 어머니와 언니들의 눈물겨운 간병 속에 이렇게라도 살아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7년이란 시련의 계절은 그녀에게 삶의 근육을 키워주었다. 지금은 절단 장애인이지만 일반인보다 훨씬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장애인 카운셀러로 도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대화를 나누고, 휠체어나 의수족 등 보장구를 모아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을 한다. 20025월부터는 KBS 3라디오 함께 하는 세상 만들기’(638KHz, 오전 9)를 진행하는 방송인으로 맹활약 중이며, 장애인신문 등에 장애 정보 관련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로도 이름을 얻고 있다.

 

 김진희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미국 장애인 육상선수 겸 패션모델인 에이미 멀린스였다. 의족을 하고서도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기사를 접하며 그녀는 새로운 삶에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에이미 멀린스처럼 장애인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방송이나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외국 유명 인사와 체육선수 등 절단 장애인의 아름다운 삶을 소개하는 일에 열심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이따금 장애가 뭐 벼슬이라고 떠들고 다니느냐?”는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가장 큰 아픔은 사고 당시 열등감에 사로잡혀 약혼자를 떠나보낸 일이다. 지금은 새로운 사랑을 기다릴 만큼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의족을 착용한 채 헬스도 다니고 혼자서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장애 때문에 지레 움츠러들었던 건 바보 같은 행동이었어요.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을 때 삶은 다시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은 닫힌 마음이 열리는 순간에 비로소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장애는 힘들다. 하지만 진취적인 사고로 현실의 벽에 과감히 도전할 때에 새로운 돌파력이 생기며 다른 차원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역경 앞에 도전하는 그 사람이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