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마다 생긴 모양도 다르고 맺는 열매도 다양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생김새가 다르듯 성향도 다 각각이다. 그것이 사람의 매력이다. 나무와 비교해 보자. 밤나무는 밤나무대로, 감나무는 나름대로 개성과 멋을 풍기며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밤나무는 밤만 잘 열리게 하면 된다. 감나무는 달고 탐스러운 감을 맺으면 된다. 그런데 만약 밤나무를 향하여 “왜 감이 안 달리느냐?”고 한다든지, 감나무에게 “왜 밤을 맺지 못하느냐?”고 하면 어떻게 될까? 나무가 난감해하는 것은 물론이요, 쳐다보는 주인도 실망을 계속할 뿐이다. 부부가 그렇다. 부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난다. 간혹 취향도, 성장배경도, 성격도 유사하여 잘 맞는 부부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부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만나 연(緣)을 맺는다.
다른 것을 서로 수용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평생을 힘들어하는 부부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부부들이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채근(採根)한다. 사람은 안 변한다. 나이, 경력, 능력이 쌓이고 세월이 흐른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이다. 세월의 연륜처럼 사람이 성숙하고 변한다면 아마 이 땅에는 성자들로 가득할 것이다. 소위 철이 나는 것은 삶의 굴곡에서 깨달으며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음먹은대로 인생이 풀려갈 줄 알았는데 막다른 골목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순간, 사람은 한계를 느끼며 변해 간다. 따라서 남편(아내)를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지 않는 한 가정의 평안은 없다.
한국에서 유력하게 가정사역을 펼치는 분이 송길원 목사이다. 직접 만나기도 한 목사님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이 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에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닐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 형이다. 새벽 시간에 일어나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형이다. 밤새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은 즉시 씻어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제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style)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可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香)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 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확 부어버려, 맹물 부어줄까 그래.'' 거기다 나는 약속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아내를 향해 언성을 높이며 역정을 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야, 이 자식아,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 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그러면서 송 목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아내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돕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그 글을 대하며 떠오른 것이 밤나무, 감나무였다. 이미 서로 다른 성향인데, 달라도 너무 다른데. 상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밤을 탐스럽게 맺었으면 칭찬해주고, 주렁주렁 감이 열렸으면 그 모습을 사랑해야 한다. “왜 나 같은 열매는 없느냐?”고 달려들면 부부간에 골은 깊어만 간다. 결국 “결혼생활은 무엇을 추구하느냐?가 아니라 상대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느냐?”인 것 같다.
억지로나 애를 쓰며 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해 주는 것을 행복으로 승화시키는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가 밤나무(감나무)임을 받아들이며 밤에게 감을 주고, 감에게는 밤을 안겨주는 가슴이 넓은 배우자를 부부는 고대하며 살고 있다. 다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