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송을 보다보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는 것을 본다. 부부가 출연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홀로 나오기도 한다. “인생살이”에 대한 진솔한 대담은 현실적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이 드신 분들의 이야기에는 가식이 없다. 욕심도, 어떠한 원망과 비방도 없다. 오로지, 사실 그대로의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면서 미련스럽게 진솔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는 늘어가는 나이 앞에 평범하게 순응하는 어르신들의 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보이는 풍경들이 감동을 준다.
역시 노인들은 대범하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살아오며 힘들었던 사연들을 옛이야기처럼 토해내며 큰소리로 웃어 제낀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바람을 많이 피워 속상했던 일들을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공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고통 속에 살았을까? 가정을 돌보지 않고 역마살이 끼어 팔도를 돌아다니며 난봉을 피우는 남편을 기다리며 밤잠을 자지 못하며 눈물지었던 세월은 지옥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산다. 미움을 용서와 사랑으로 덮어낸지 오래이다. 작정을 한 듯이 남편의 과거 행각을 드러내는 현장에서 할아버지는 미안하고 수줍은 표정으로 먼 산만 바라본다. 사회자의 인도를 따라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빌고 간이 내적치유의 시간을 가진다.
우리 어머니들이 그렇게 살았다. 남편은 밉지만 절대 아이들은 포기하지 못했다. 모질게 세월을 살아냈고 모든 것이 원통스럽지만 그런 고통 속에서도 잘 자라준 자녀들의 모습이 대견할 뿐이다. ‘또박또박’ 용돈을 부쳐주는 효도 속에 “그래, 그때 내가 참 참았어.”하시며 위안을 받을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시집살이가 고되긴 고되었나보다. 어느 할머니가 등장하시더니 대번 시어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음에 안 들면 손찌검까지 하는 호랑이 시어머니셨다나. 밤에 주무시다가 “칼국수를 해 오라”고 하면 밀가루를 밀어 한밤중에 칼국수를 끓여 대령하였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안가는 이야기다. 한 할머니는 남편이 바람을 피워 괴로웠는데 나중에는 화투 도박에 빠져들어 차라리 바람을 피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눈을 감아 버렸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부부가 등장한다.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대번 “이 사람이 3번째 부인이라”고 말한다. 사연을 물으니 첫 부인과는 사별을 하였고, 두번째 부인은 집 재산을 자꾸 빼돌려 바로 헤어지고 지금의 부인을 61세에 만나 15년을 함께 살았단다. 3살 연상의 부인에게 재혼하면서 “무엇을 요구하였는가?”라고 물으니 할머니의 대답이 가관이다. 『첫 번째. “닭 3마리”, 두 번째 “돼지고기 5근”, 세 번째는 “3일에 담배 1갑”』 지금 세대들은 기가 막힐 수 있으나 그 당시는 이것도 큰 요구사항이었던 것 같다. 그 후 이야기가 감동이다. “남편은 성실히 약속을 이행했고 시골 사정을 잘 아는 부인은 몇 달 후 그만두라”고 하였다나.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는 사랑의 표현이 전무했다. 부부간이라도 애정표현을 하는 것은 망측스럽게 생각했다. 그런 분들을 향해 짓궂은 사회자가 부부를 마주 세워놓고 사랑의 고백을 하게 한다.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용감하게 “사랑한다”를 큰소리로 외친다. 말한 본인은 쑥스런 표정이고 보는 이들은 박장대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바다는 메워도 인간의 마음, 욕망은 채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행복은 소박한데 있음을 깨닫는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대에 가보면 “삶이란 결코 그렇게 힘들거나 어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가 보다. 많이 가져야만 행복할까? 나이가 젊어 힘이 넘쳐야만 행복한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인생이 복된 삶이다. 나이가 들어가지만 늘 푸른 인생을 사는 이 땅에 노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