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장 부러운 것이 있었다. 부친을 “아빠”라고 부르는 친구와 아빠에게 칭찬을 듣는 아이들이었다. 라디오 드라마(당시에는 TV가 없었음)에서는 분명 “아빠”라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항상 “아부지”라고 불러야 했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성적표를 받아 아버지에게 내어 밀면 성적이 잘 나왔어도 아버지는 한번 보시고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초등학교 때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고, 중 ․ 고등학교 시절에는 웅변을 해서 상을 제법 받아왔지만 아버지의 표정과 헛기침은 한결같았다.
화끈한 칭찬 한마디면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을 텐데 아버지는 칭찬에 매우 인색하셨다. 아니 당시 아버지들은 그것이 아버지의 권위를 나타내는 한 자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말로 칭찬을 하는 일에는 지나치게 절제를 하셨다. 칭찬은 사람의 기를 살리는 ‘뽀빠이의 시금치’ 같다. 칭찬 한마디에 사람의 인생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발전해 갈 수 있다. 칭찬은 잘 자라는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칭찬은 돈이 들지 않는 보약이다. '말'에 불과하지만 그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애정을 공급하는 파이프가 칭찬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거나, 칭찬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자란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자식들에게도 사랑을 주지 못하게 된다. 칭찬 한마디 못 듣고 자란 것이 나중에는 가혹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칭찬은 기적을 가져온다.”는 말이 있다. 마치 시들었던 화초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면 줄기가 힘을 얻고 잎이 활짝 피어나듯이 꾸준한 칭찬을 통하여 애정이 재공급되면 기적처럼 변화되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자기 부인에 대하여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 목회자가 있었다. 그분은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살고 있으나 단 한가지 소원이 있는데 “부인이 음식이라도 좀 제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해 주면 견딜 수 있겠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그분의 모든 불만을 충분히 들어주고 나서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이제부터는 식사 때마다 부인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도록 숙제를 주었다. 그는 가정의 불행으로 너무 지쳐 있었고, 마지막 희망으로 부부 행복학교에 참석했기 때문인지 칭찬 숙제를 잘 해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날도 밤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부인은 습관적으로 된장찌개를 다시 데워서 밥상을 차려 주었다. 남편이 먹다보니 찌개는 너무 짰다. 어저께 만들어 놓았던 것을 아침에 한 번 데웠고 저녁에 또 한 번 데웠으니 당연히 짤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남편은 속으로는 ‘되게 짜다, 되게 짜…’하면서도 “여보, 오늘 된장찌개가 참 맛있네. 장모님께서 오셨다 가셨나? 장모님 솜씨인데…”하면서 칭찬을 했다. 사모님은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목사님을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늘 타박만 하던 남편이 갑자기 칭찬을 하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참으로 ‘웬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칭찬은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사모님은 고마우면서도 그 칭찬의 수준에 맞는 음식을 하려니 아무래도 정성껏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정성을 드려서 안 되는 일이 있는가? 더구나 성도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은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삼일 째 되는 날 저녁 식탁의 된장찌개에 기적이 일어났다. 참으로 구수하고 감칠맛이 나는 된장찌개가 올라온 것이었다. 간단한 두 번의 칭찬이 '된장찌개의 기적'을 가져온 것이다.
칭찬은 이처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칭찬하자! 우리 세대는 칭찬에 배고픈 세월을 살았다. 가족 간에 칭찬이 풍성해지는 만큼 가정은 전인적으로 행복한 가정이 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금부터 칭찬을 시작하자! 어느새 바로 이곳이 천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