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내쉬면서 혀로 목구멍을 막는 거야. ‘학’ 해 봐.” 6살 “별이”는 엄마와 ‘말 연습’을 하고 있다. 마주 앉은 엄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학”이라고 말하면 별이는 ‘하’ 아니면 ‘항’소리를 냈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엄마는 숨이 차오른 별이의 입술이 파랗게 되도록 다그쳤다. 결국 엄마의 손가락이 억지로 혀를 올려붙여 주고서야 별이는 거친 ‘학’ 소리를 토해냈다. 별이의 큰 눈동자가 금새 붉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별이는 농아(聾啞)다. 농아유치원에 다니며 수화를 배웠고, 내년에는 농아 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할 계획이지만, 엄마는 별이에게 발음 하나하나를 연습시켜 소리말을 가르친다.
청각장애는 사실 듣지 못하기에 말까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가끔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말 못하는 짐승’을 대하는 것 같아요” 선천성 농아인 김모(35)씨가 어려서 처음 배운 낱말은 ‘벙어리’였다. 낯선 이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귀로 듣지 못하고, 입으로 소리를 못 낸다고 해서 말을 못한다고 단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손으로 말을 하고, 눈으로 듣습니다. 농아인은 여러분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지,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청각장애인들의 가장 큰 고통은 소통의 부재이다. 수화통역사가 없는 한, 의사소통 문제는 삶의 모든 상황에서 장애로 다가온다. 가장 절박한 것이 직업의 한계다. 이는 농아인들의 교육 소외로 인해 더욱 확장된다. 농아인 절대다수는 고졸 이하다. 고교를 나와도 사회가 요구하는 언어 능력을 갖추기 힘들어 지식노동에서 멀어진다. 사회 곳곳은 ‘소리의 인식’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나 지체장애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대로 차츰 갖춰지고 있지만 소리는 예외이다. 이 때문에 농아인들은 화재 경보를 못 들어 피해를 입기도 하고 택배, 음식 배달 등 전화를 이용한 모든 문화에서 소외된다.
가족으로부터 겪는 소외도 심각해 건청인 가정의 농아인들은 가족간 친밀감이나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가족들보다 농아인 교회나 쉼터를 찾게 된다. 한국농아인협회는 “자녀의 청각장애를 병리적으로 바라보고 구화 중심의 교육을 하거나,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강요하는 부모들이 많다”며 “이것이 자녀에게 뜻하지 않은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아인에 대한 흔한 오해를 살펴보자. 먼저 “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전체 농아인의 약 20~30%는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해서 글을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글을 배웠다 해도 문장의 이해 및 표현 능력은 초등학생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둘째로 “농아인들은 지능이 낮다.” 상당수 농아인들이 단순 노동에 종사하거나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다. 또 능숙하지 못한 수화통역사가 농아인의 수화를 단순하게 옮기는 경우, 농아인들이 쓰는 문장에 문법적 오류가 많은 것 등을 보고 '지능이 낮다'고 오해하기 쉽다. 언어 능력을 제외한 농아인의 지적 능력은 정상인과 차이가 없다.
세 번째, “청각장애는 모두 유전된다” 우리나라의 청각장애는 후천적인 경우가 80% 이상을 차지한다. 소위 '선천적'이라 해도 유전적 이유는 이중 절반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전체 농아인의 10% 미만이 유전적 청각장애인이다. 실제로 농아인끼리 결혼을 해서 낳은 자녀들중에는 온전한 청각 능력을 가진 건청인들이 흔하다. 따라서 다른 유전병과 마찬가지로 부모가 미리 유전자 검사를 하면 자녀에게 장애가 유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청각장애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수화, 구화, 필담이 있다. 구화는 입모양을 분명히 또박또박 해야 하고 필담은 단체가 아닌 별도로 나눠야 한다. 침묵 속에서 그들만의 꿈을 피워내도록 배려해주고 다가가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